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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러시아가 왜 시끄러운가 했더니 /김갑수

유명 관광지·공연장, 중국인들로 장사진…안하무인 여행 매너, 20년 전 우리 보는 듯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9-22 19:13:5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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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고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장관이었다. 추석 연휴를 활용한 일주일간의 짧은 여행이었는데 나로서는 처음 가 본 러시아였다. 로마노프 왕조의 휘황찬란한 궁전이며 성당들과 소비에트 시절을 상기시키는 거대취향의 시설물들이 의외로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장관 중의 장관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시끄러움이었다. 거의 고함에 가까운 사람들 떼거리의 왁자한 목소리들이 모든 관광지를 가득 메워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시끄러움의 진원지는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아르미타쥐 궁전을 가도 붉은광장이나 굼 백화점을 가도, 그 유명한 아르바트 거리를 가도 온통 중국인들이 새카맣게 모여 장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큰 소리로 일행을 부르고 서로를 툭툭 치며 장난을 치고 함부로 거리에 담배꽁초를 던지고 심지어 신호등조차 어기며 거리를 휘저었다. 압권은 공연장에서였다. 예술의전당 통상 가격보다 더 비싸 바가지가 아닌가 싶은 고액을 내고 키로프 발레단의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러 갔는데 거기도 예외 없이 관객 대다수가 중국인이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 공연이 시작되거나 말거나 중국인 관객들은 큰 소리로 옆 사람과 떠들고 금지된 사진촬영을 마구 해대고 자리를 이동하고 심지어 숨겨 들여온 음식물을 먹기도 했다.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에 관객 절반은 나가버렸고 이후부터 남은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장을 들락거렸다. 공연장 관계자들도 나중엔 속수무책인 듯 포기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부분 정장을 하고 객석 뒷줄을 채우고 있는 서방권 관객들의 품위 있는 관람 태도와 대비되어, 얼굴이 구별되지 않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창피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함께 간 대학생 아들과 같은 나잇대였다면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중국인 정말 싫다고. 저 꾀죄죄한 옷차림과 볼꼴 사납고 안하무인 격인 매너와 시끄러운 목소리를 참을 수 없다고. 중국인, 아니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멸시하는 감정을 품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여길 만한 행동들을 눈앞에서 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기는 전용버스 안의 고요 속에서 나는 계속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였다. 물론 듬성듬성 보이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중국인처럼 무례하지 않았다. 옷차림도 세련되었고 쇼핑에 열을 올리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다수 있을 텐데 조용한 탓인지 크게 무리지어 다니지 않아서인지 거의 존재가 의식되지 않았다. 그렇다. 시간 차, 경험 차, 경제력 축적의 연륜 차이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1970년대 일본인들의 한국 기생관광은 유명했다. 일본의 서민계층이 푼돈을 내고 찾아와 저급한 술자리로 어글리 재패니즈의 악명을 떨쳤다. 1990년대 들어 해외여행 자유화를 맞이한 한국인들의 관광매너 또한 유명했다. 유럽의 유수한 숙박지에서 '한국인 출입사절' 푯말을 내걸었다는 해외토픽이 심심치 않게 뉴스가 되고는 했다. 실은 지금까지도 동남아에는 한국인들의 보신관광, 섹스관광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일본인들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하고 품위 있는 여행태도로 성숙했다. 한국관광객들도 그 못지않게 세련미를 더해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중국 관광객들의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은 그러므로 처음 돈을 써보는 사람들의 보편적 행태와 다름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들은 단지 '지금' 저렇게 촌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20여 년의 해외관광 체험을 쌓아 세련되어 가고 있듯이 중국인들 역시 10년 후, 20년 후에는 여행매너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편견은 항상 지금의 체험을 기준으로 생겨난다. 특정 고장 사람들에 대한 편견, 가난한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어온 북한에 대한 편견, 더 나아가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들. 이 모든 편견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편견의 대상이 되는 존재와 다를 바 없고 더 나아가 지각없는 가해자가 된다. 기억 또는 역사성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인간만의 특권이자 능력 아니겠는가. 지금 중국인 관광객들은 바로 어제의 우리들이다.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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