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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집권 측의 여의봉 휘두르기 /강동수

걸핏하면 써먹는 정상회담 대화록

정치위기 올 때마다 계속 휘둘러대다간 큰코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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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유기'의 한 토막부터. 화과산의 돌원숭이 손오공이 수보리조사에게 72가지 변신술을 익히고 마음대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여의봉을 용왕의 보물창고에서 훔쳤다. 그래선 천궁과 용궁, 염부를 돌아다니며 온갖 말썽을 일으킨다. 여의봉으로 이놈 저놈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천도복숭아까지 훔쳐 먹으니 옥황상제도 두 손 두 발 들었다. 기고만장해져서 나중엔 부처님에게까지 대들었다가 오행산 바위에 500년 동안 깔렸다는 이야기.

박근혜 정권이 국정원에서 훔쳐낸 여의봉은 아무리 봐도 신통방통하다.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 말이다. 그걸 휘두르기만 하면 정권도 굴러 오고 갖가지 정치적 위기도 거짓말처럼 물러간다. 이 여의봉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지난해 대선 때. 국정원이란 보물창고에서 빼내다 유효적절하게 써먹었다. 야당의 막판 추격이 무섭던 지난해 12월 14일 부산 유세에서 김무성 의원이 "노무현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아~!"하고 고래고래 외치면서 국가 기밀인 대화 내용을 줄줄이 까발렸다.

여의봉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정원의 불법댓글 공작과 경찰의 수사 발표가 왜곡 축소됐다는 의혹이 검찰에 의해 까발려지자 새누리당은 다시 '노무현의 NLL포기론'을 동네방네 떠들었다. 국정원이 기습적으로 터뜨린 대화록을 뜯어봐도 명시적으로 NLL을 포기한 내용은 없다. 그래도 조폭처럼 몽둥이를 휘둘러대니 물렁한 야당은 야코가 죽어 방어에 급급했던 거다. "그러면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원본을 꺼내 보자." 그런데 일이 꼬인 건 원본을 찾지 못했다는 거다. 야당은 당황했고 새누리당은 "노 정권이 사초를 말살했다"고 기고만장했다.

그랬다가 국정원 수사를 지휘한 검찰총장 채동욱을 찍어내는 와중에서 '청와대 공작설'이니 뭐니 역공을 당해 스타일을 구겼다. 기초연금 공약이 대폭 후퇴하면서 정권의 신뢰성이 도마에 올랐을 뿐 아니라 주무장관의 항명성 사퇴로 대통령의 리더십에 구멍이 생겼다. 그러자 또 꺼내든 게 이거다. 원본(또는 초본)은 폐기됐고 수정본은 봉하마을의 데이터베이스에만 있더라는 거다. 새누리당은 "연산군도 안 한 사초 말살을 했다"며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어물쩡 문대려고 기를 쓰는 중이다. 노 정권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원에 넘기지 않은 건 정황상 사실인 모양이다. 하지만 사초 말살이란 과장이다. 어디 대화록이 사라지고 없나. 국정원이 흘리고 새누리당이 써먹은 대화록은 그럼 가짜란 말인가. 그것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이 보관하던 사초가 아닌가. 삭제된 초본과 수정본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서 사초 말살로까지 몰아갈 일인가.

원본을 대통령기록원에 넘기지 않은 잘못과 공개돼선 안될 국가기밀을 빼낸 죄 중에 어느 게 더 큰가? 왜 국가기밀을 훔쳐다 선거에 써먹은 잘못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관리 부실만 시도 때도 없이 뭇매를 맞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에도 책임이 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야당이 무르고 비겁하기 때문이다. "좋다. 우리 쪽이 관리를 잘못한 건 사과한다. 책임자를 처벌해도 좋다. 대신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과 경찰의 축소은폐, 대화록의 불법 공개도 처벌해야 한다"고 대차게 나서지 못하는 건가.

아무리 봐도 야당은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정치 공작 수준에 족탈불급이다. 국가기밀을 훔쳐다 써먹고는 그 책임을 전 전 정권의 사초 말살이라 역공해 덮어버린다. 자기네 자충수로 생긴 위기를 아무 관계도 없는 대화록 문제를 되꺼내 뭉개버린다. 그 눈부신 솜씨에 경탄할 밖에. 다음에 또 헛발질할 때를 대비해 '대화록 음원파일'을 국면타개용으로 써먹으려고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청와대와 여권에 한마디만 하겠다. '금고아'란 게 있다. 삼장법사를 따라나선 손오공에게 부처님이 채워놓은 머리띠다. 말썽을 피울 때마다 머리통을 사정없이 죄는 거다. '남북정상 대화록'이 지금은 여의봉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걸 휘두르는 데 재미들리면 당신네 머리통을 죄어붙이는 금고아로 바뀌지 말란 법이 없다. 국민들이 이제는 당신네의 수법을 눈치채고 있다.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하고 혀차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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