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대공황 이후 상실감에 빠져있던 유럽인들에게 '샹그릴라'는 이상향이었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1933년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상상 속의 유토피아로 묘사하면서다. 세상과 격리된 설산 속의 지상낙원은 문명생활에 염증을 느낀 유럽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국 윈난성은 티베트자치주의 중디안(中甸)이란 곳을 샹그릴라라고 주장했다. 해발 3400m 곤륜산 자락에 위치한 중디안은 당나라 때부터 차마고도의 경유지로 번성했던 고원마을.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다. 윈난성은 지난 2001년 지명을 香格里拉으로 바꿨다. 뜻보다는 샹그릴라란 발음과 가장 가까운 표기를 택한 결과다. 실제로 이곳은 멋진 풍광과 고풍의 티베트 불교사원 그리고 고대의 건축물들이 원형대로 남아있던 곳. 소설 속 샹그릴라를 떠올릴 만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 됐을 게다.

관광지가 되기 전 이 마을엔 티베트족 1만여 명이 평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윈난성 정부의 관광홍보와 함께 개발광풍에 휩싸인 이곳은 인구 10만이 훌쩍 넘는 도시로 변해갔다. 관광객용 셔틀이 수시로 드나들고, 곤륜산 자락을 격조 있게 장식하던 티베트 사원은 화려하게 꾸며졌다.

그나마 이곳의 명성을 지탱해온 고대의 목조주택 100여채가 불탔다고 한다.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자칫 차마고도로 명성이 높았던 인류의 문화 유산이 현대식 구조물로 대체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도 지난 2008년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이 소실돼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이다. 문화재는 한 번 파괴되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대문 복원에 쓴 목재의 출처를 놓고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샹그릴라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은 곳이다. 설산 속 신비로운 낙원이라면 누군들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관광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좋지만 철저히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과 어우러진 '마음속의 해와 달'을 인류가 두고두고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