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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희망 절벽과 대망론 버블 /박무성

박근혜 정부 1년 9개월…벌써 '반기문 대망론'

경제민주화 사라지고 세월호에 냉혹한 정부, 국민 차기에 희망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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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이명박 정부를 가장 혹독하게 비판한 이는 강인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아닌가 싶다. 강 교수는 이 정부를 '사악하다'고 했다. 당시 사상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개발사업은 '공동체 소유인 자연을 민영화하는 작업으로, 4대강 살리기가 살리려던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였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이 정부는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사악하다는 것이다. 다분히 감정적으로 동원되는 '사악하다'는 표현이 강 교수의 글에서는 지극히 논리적으로 쓰였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앞세워 상당히 큰 표차로 당선됐다. 2007년 대선에서 그는 이른바 '747 공약'(연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내세웠다. 국민들은 그 자신이 부자가 됐던 그런 길로 인도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국민들이 '부자가 되고 싶다'고 희망한 것은, 그게 허망한 욕망이든 어쨌든 참 절실하고 절박했던 것 같다.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희망을 철회한 그때 상당수 사람은 대신 '안철수 현상'을 좇았던 것 같다. 속절없는 약속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희망과 기대가 필요했을 테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백수들, 연애·결혼·출산도 포기했다는 3포 세대, 조기 퇴직하고 노후 대책 하나 없는 50대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개인 안철수가 아닌, 새 정치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응축된 바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안철수 현상'을 배태한 근원은 어쩌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정확하게는 이 대통령의 실패에 있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요 며칠 때 이른 차기 대권 논란으로 정치권이 떠들썩했다. 그 주인공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난달 말 새누리당 내 친박근혜계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반 총장의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 데 이어, 이달 초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권노갑 상임고문 등이 '반기문 영입론'을 띄웠다. 자파에 뚜렷한 차기 대권 주자가 없는 친박계는 비박계의 독주를 막기 위해, 비노무현계는 친노계를 견제하기 위해 저마다 반기문 카드를 꺼낸 든 것으로 해석된다. 반 총장 자신이 극구 부인하고 나서면서 논란은 일단 잦아들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 친박계와 비노계의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불거진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과연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일까. 어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39.7%로 2위 박원순 서울시장(13.5%)보다 3배가량 높았다. 질문 문항이 반 총장의 이름만 거론돼 집중효과로 인한 허수가 많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반면 높은 지명도와 글로벌 이미지, 충청권 출신으로 여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중도적 위치, 새 인물에 대한 열망 등으로 다크호스를 넘어 언제든 강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아무튼 현재로선 권력의지가 없다는 반 총장을 두고 대망론까지 나오는 것은 섣부른 감이 없지 않다. 다만 한국정치 토양의 척박함이나 향후 입지가 불안한 일부 정치인의 부박한 처신으로 치부하기에는 께름칙한 데자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안철수 현상을 불러들였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반기문 대망론을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박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년9개월째, 미처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대권론이 나오는 건 정부의 정책 추진력 상실은 물론 레임덕을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아주 심각하다. 무엇보다 민생이 더욱 힘겨워진다. 경제민주화는 온데간데없고 백약이 무효인 듯한 중병 경제, 보편복지는커녕 그나마 시작된 초보 복지마저 흔들리는 불안한 일상, 세월호 유족에 그러했듯 매정하다 못해 냉혹하기까지 한 대통령. 기대도 희망도 거둬들인 국민들은 지금의 대통령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하루빨리 차기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더 있겠는가.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가 있느냐 없느냐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미륵'이 필요한 법 아니던가.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기문 대망론은 불쑥불쑥 불거질 공산이 크다. 그건 안철수 현상처럼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희망의 에너지 같은 것이다. 언젠가 거품으로 사라질망정 그런 기대치가 현실을 견디는 힘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때 이른 차기 대권론에 불쾌한 심사를 드러내기에 앞서 위기의 민심을 읽어야 한다. 친박계의 큰 어른으로 불렸던 이상돈 교수마저 박근혜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정녕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벌써 차기 대권을 기다리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길고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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