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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또 다른 습격, '정치바이러스' /최원열

그리스의 포퓰리즘, 나라 거덜나게 해

만만찮은 한국정치, 골든타임 놓치기 전 설득과 포용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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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논문 한 편이 일본 지식인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제목은 '일본의 자살'. 자멸은 내분으로 일어난다는 게 골자였다. 그들이 동서고금의 문명들을 분석한 결과 거의 예외없이 모든 나라는 외적 아닌 내부 요인으로 스스로 무너졌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국가 자살의 공통요인은 이기주의와 포퓰리즘(대중영합). 그 대표적인 예로 로마제국을 들었다.

로마가 무너진 건 '빵'과 '서커스' 때문이라고 논문은 적시했다. 제국이 번영을 구가하자 지배엘리트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특혜를 베풀었다. 시민들이 빵을 요구하자 공짜로 나눠줬다. 먹는 문제가 해결된 대중이 무료해하자 영특한(?) 지배층은 서커스 카드를 내밀었다. 바로 격투기였다. 많이 열렸을 때는 연중 절반이 콜로세움의 함성으로 들썩거렸다. 엘리트가 대중의 비위를 맞추려 할 때, 그리고 시민들이 그 단맛에 중독될 때 사회와 국가는 자살코스로 접어든다고 논문은 준엄하게 경고했다. 물론 여기서 빵은 퍼주는 무상복지요, 서커스는 포퓰리즘을 뜻한다.

지금 우리는 로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무너져 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로마에 앞서 찬란한 인류 문명을 일으킨 그리스에서. 이 나라 역사상 최연소 총리로 등극한 치프라스는 권력을 잡기 위해 로마와 같은 지배 전략을 쓰는 치명적인 도박을 감행했다. 그리고 유럽연합(EU)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한판 대결에 올인하며 나라 전체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게임이론의 대가인 재무장관을 앞세워 국민 고통을 담보로 치킨게임(벼랑 끝 전술)에 명운을 건 그리스. 잘못된 일이 시작되면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 '머피의 법칙'이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

그리스는 이미 300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지원을 등에 업고도 경제 회생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왜냐고? 빵과 서커스 놀음을 벌였기 때문이다. 퍼주기식 복지로 나라 재정이 거덜난 데다, 탈세와 부정부패가 사회를 뒤덮으면서 세수마저 쪼그라드니 자살 코스를 걷지 않을 수 있겠나. 노동가능인구의 20%가 공무원이고, 이들의 월급만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는다. 심지어 퇴직 후에도 월급에 준하는 연금을 받는다. 사회가 썩어 들어가고 청년들은 일할 자리를 찾지 못해 고개를 떨군다. 청년실업률이 50%까지 치솟으니 견딜 도리가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온 극적인 반전, 다시 말해 '트로이의 목마'는 현재 상황을 볼 때 도저히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권력욕에 빠져 국민을 중독시키고 나라를 거덜나게 하는 정치는 이토록 무섭다. 국가 자살로 이끄는,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썩은 정치의 파괴력을 보라. 그건 메르스보다 무서운 '바이러스'다. 감염력과 전파력이 과거 인류를 오들오들 떨게 했던 스페인독감 못지 않다. '정치바이러스'는 대중을 일시에 죽이지는 않는다. 살상력은 약하되 야금야금 파고들어가 아편처럼 나라 전체를 좀먹는다. 지배층만 믿고 있던 국민들은 갈 길을 잃고 허둥댄다.

겉으로 보기에 잘나가는 대한민국. 그리스를 보고 느낀 점은 없는가.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빵과 서커스가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상급식에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 일반국민들이 괴리감을 느끼는 연금 문제까지. 한국형 정치바이러스는 점점 힘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권력층의 시각에서 국민은 표밭일 뿐이라는, 받들기는커녕 길들이고 중독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당의 당·청갈등과 야당의 주도권 다툼은 민생과는 무관하다. 흡사 권력욕과 밥그릇 챙기기에 빠져 치킨게임을 벌이는 양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강한 톤으로 밀어붙인다. 도대체 여당 원내대표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주장이 틀린 게 뭐 있나. 당선된 후 상대를 품는 모성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약속은 공수표가 됐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한술 더 뜬다. 경제 여건이 어렵기만 한데 회식이 업무연장이라며 수당 도입을 제안했다. 참으로 황당한 발언이다. 그리스에서 공무원 지각을 막으려고 정시에 출근하면 수당을 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러면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상대를 심판해 달라고 하니 국민들이 고개를 돌릴 밖에.

바이러스란 인류와 숙적이지만 한편으로 공존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동지와 적으로 나뉘기에 갈등은 필연적인 산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멸을 피하려면 반드시 설득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원한과 독기로 뭉쳐 헐뜯기만 한다면 정치바이러스는 슈퍼바이러스로 변신해 팬데믹(대유행)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그걸 깨달아야 한다. 나라와 사회를 파괴시키는 쓸모없는 에너지(엔트로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정치바이러스의 세력을 키워주고 있음을. 정치의 골든타임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제발 나라를 뒤흔든 메르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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