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지 말고 걸려라!" 어릴 적 어머님이 하시던 말씀이 귓전에 쟁쟁하다. 엄살을 피우며 업히려는 아이를 땅에 내려놓으면 아이는 투덜대면서도 걸었다. 어머님은 또 "두 발이 땅에 닿아야 지각능력이 생긴다"는 말씀도 하셨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시기와 걷는 시기는 거의 일치한다고 하는데, 어머님은 그 이치를 행동으로 가르친 셈이다.
요즘 아이들은 걷는 것을 귀찮아한다. 조금만 멀어도 타고 간다. 부모들이 그렇게 시킨다. 걷지 않는 아이들-. 문제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문제로 보지 않는다. 걷기 않는 아이들은 잘 놀지도 못한다. 자기 중심적이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비만이 생기고, 불평 불만이 많다. 걷지 않아 생기는 성인병 못지 않게, 아이들의 걷기 불감증도 예삿일이 아니다.
걷고 뛰노는 것은 아이들의 본성인데, 문명의 이기가 아이들을 길에서 쫓아버린 꼴이다. 아이들이 걷기를 귀찮아하는 것은 어쩌면 걷기조차 시키지 않은 부모들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시골 출신인 나도 그랬다.
부산의 '갈맷길'을 수시로 걷고 있다. 제주 올레길이 좋다고 하지만, 시간이며 경비며 잠자리며 찾아가는 수고 등을 생각하면 부산사람들에겐 갈맷길만한 걷기 좋은 길이 없다. 갈맷길은 '갈매기+길' 또는 '갈매(짙은 초록빛)+길'의 합성어로 부산 전역에 걸쳐 9개 코스 20개 구간(총연장 264㎞)이 열려 있다. 도시철도나 시내버스로 쉽게 찾아갈 수 있고, 볼거리, 먹을 거리, 이야깃거리까지 즐비하니 무엇을 더 바라랴. 웰빙(삶의 질을 강조하는 생활 방식) 혹은 로하스(건강과 환경이 결합된 소비자들의 생활패턴)를 추구하는 시대에 딱 어울리는 생태자원이다.
갈맷길을 걸을 때마다 아이들을 불러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가하게 해 보는 소리가 아니다.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고질적 교육 문제의 해결책이 여기 있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업지 말고 걸려라!" 하시던 어머님 말씀이 하나의 지침이 될 수도 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집이나 학교 주변에 초등생부터 중 고교생들이 걷기 좋은 코스는 즐비하다. 해안길, 강길, 산길, 도심길이 아기자기하게 연결돼 있어 어느 곳을 선택해도 된다. 걷다 보면 심신이 단련되고 정서가 순화된다. 서먹했던 친구들을 서로 이해하게 되고 자기 바깥, 교실 바깥의 것들을 보게 된다. 웬만한 코스에는 재미있는 전설이나 이야기가 있어 자연스럽게 지역사 공부까지 가능하다. 남구 이기대길에는 공룡의 자취와 임진왜란 때 왜장을 안고 바다에 몸을 던진 두 기생(二妓)의 전설이 스려 있고, 영도 절영해안산책로에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이 절영마를 놓고 벌인 무용담이 전해진다. 기장 죽성리에는 유배 당한 고산 윤선도와 그의 아우가 주고받은 애절한 시문이 시공을 초월해 감동을 안겨준다.
거창하게 시작하기 보다 먼저 학교 차원에서 교실 단위로 모둠을 형성해 걷도록 해 보자. 지도교사가 안내하기 어렵다면 외부의 스토리텔러를 초대해도 된다. 퇴직교사나 전문직 은퇴자 등을 활용하면 이 분야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부산시교육청에서 길 걷기 학교나 도보여행교실 같은 체계적인 걷기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걷기 교재나 프로그램은 걷기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지역의 걷기전문 법인이나 단체들과 연계하면 길이 나온다.
걷기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풀어주고 조인다. 걷다 보면 풀리고 조여진 몸과 마음이 어느덧 하나가 돼 있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영원한 소년이고 소녀다. 그곳에는 소풍길을 뛰어다니던 소년, 소녀가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에밀'에서 "우리의 첫 철학 스승은 발이다"고 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듯, 걸으면 생각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진다.
부산 기장에 사는 발달장애인 균도는 아빠의 도움을 받아 전국을 도보여행했다. 총 도보 거리가 3000㎞였다니 초인적 여정이다. 장애인들이 겪는 아픔을 호소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걸으면서 균도는 더 강해졌다. 사회적 이목이 쏠리자 균도 아빠 이진섭 씨는 '우리 균도'(후마니타스)라는 책까지 펴냈다. 처음에는 철없는 균도가 아빠가 내민 손을 잡는 것으로 만족했으나, 이젠 균도가 아빠를 이끄는 힘이 생겼다. 균도 아빠는 그런 아들 덕분에 힘든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길 걷기가 가져다준 인간 승리다.
이런 극적인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길에서 걷고 뛰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갈맷길은 집에서, 교실에서, 학원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공부에 찌들린 아이들을 위한 해방구가 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갈맷길의 바닷바람과 흙내, 갯내, 풀내를 맡고 이야기를 벗삼아 호연지기를 키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아, 갈맷길로 뛰어 나가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