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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최원열

베이비부머 은퇴 이후 청년실업만큼 절박

노년층 일자리 배려, 상생사회 가는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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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바로 이맘때 프랑스는 엄청난 재앙을 맞았다. 살인 폭염이  덮치면서 떼죽음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특히 노령층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75세 이상 노인만 1만 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파리 병원들의 안치소가 모자라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다. 그것은 결코 가정의 비극이 아니었다. 나라의 참극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놔두고 바캉스를 떠났기 때문이다.

당시 '르 피가로'는 프랑스의 야만이라 절규했다. 보너스와 휴가지상주의에 젖어 있던 파리지앵들은 가족들이 찾아가지 않는 노인 시신이 무더기로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했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잊었다'고 말이다.

현대판 고려장이 어찌 양의 동서를 가릴까. 30여 년 전 칸영화제 그랑프리작 '나라야마 부시코'는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모를 산에 버린다는 불효의 극치를 그려냈다. 흉작을 견디다 못한 아들이 노모를 업고 산에 오른다. 소풍을 가는 게 아니다. 버리기 위해서다. 노모는 단단히  다짐을 받는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내려놓은 뒤 뒤돌아 보지 말고 가라. 아무도 못 보는 새벽에 출발하자"고. 죽음을 향하는 길에서도 노모는 아들의 상처를 동여매주고, 배고플세라 도시락을 챙겨먹인다. 눈물없이는 견딜 수 없는 장면이다.

요즘이라고 다를 바 무에 있겠나. 버리는 장소가 산에서 요양시설로 달라졌을 뿐. 이 땅의 노인들은 서럽다. 사회로부터 팽당하면서 느끼는 고달픔과 박탈감이 오죽할까. 존엄한 삶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후의 꿈은 온데간데없고, 메마르고 삭막한 현실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사람보다 자살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현실을 보라. 우리 사회는 이들을 사회적 자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귀찮은 짐으로 여긴 지 오래다. 그러니 배려도 사라질 밖에. 청년 실업에 못지 않은 노년 절벽이 우리나라 전체를 옥죄고 있다.

정부가 고용빙하기에 신음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대대적인 취업 대책을 내놨다. 청년 실업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배가 넘는 상황이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더구나 내년부터 법적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면 절벽이 철벽으로 변할 수도 있다. 저성장 악순환 고리를 지금 끊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인식은 당연하다. 하지만  은퇴 난민들은 어찌할 겐가.

'베이비부머' 세대를 포함한 중년은 늙음과 인생 한계를 깨닫게 되는 연령대다. 벌써 의식주 해결이 힘들어진다. 이들이 나이를 먹으면 사회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빈곤이 멸시와 고독을 낳는 절망 인생의 대량 양산이 시작된 셈이다. 장수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중요한 걸 잃어 버렸다. 인간 가치, 다시 말해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을 까먹었다. 그들은 굶어죽지 않을 만큼 도와주는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바라는데  주위의 차가운 눈길이 쏟아지면서 그게 결코 쉽지 않다. 

'삼식(三食)이'란 유행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퇴직 후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먹는 중·노년층 남성이 불쌍해 보이는가. 천만에. 그 정도면 편한 팔자다. 어쩌면 선택받은 삶일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삼식이가 확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빈곤한 살림살이에 뭐든 나가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연명하기조차  힘든 시대가 눈앞에 성큼 닥쳐왔기 때문이다.

'삶은 곧 일이다'. 미래사회의 생존전략이 아닐까 한다. 그건 단순히 원하는 희망적 담론이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당위론적 명제다. 은퇴는 숙명이지만, 그 결과는 소득 감소와 사회 단절을 초래한다. 그런데도 살아갈 날은 길어지니 바로 이 미스매치가 미래 불안의 핵심이다. 노인 노동권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10년 후 중요 이슈로 저출산과 초고령을 꼽은 정부가 당장 덤벼들어야 할 초미의 과제다.

노년층을 위한 일자리 배려는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책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다면 대한민국이 갈등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문턱을 넘을 수도 있다. 노인 취업이 노동 가치를 뛰어넘어 상생 사회로 가는 티켓을 쥘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CCTV 대신 경비원 고용을 유지하기로 한 결정은 희망적이다. 입주민들은 연간 8억 원 절감이라는 장점을 과감히 내쳤다. CCTV가 사후 대비용에 불과하며 결코 만능 지킴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 냄새 풍기는 노인경비원들을 택했다. '현대판 머슴' 취급 당하며 온갖 욕설과 폭력, 잡무에 시달리는 이들을 배려해 준 이웃이 고마울 따름이다. 고용 약자이자 사회 약자인 노인들을 우리가 잘 돌봐주는 것이 인간 가치 회복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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