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희한한 역설이 있다. 유럽의 알짜배기 평원에 내리쬐는 풍부한 햇빛과 대지의 축복 속에 프랑스인들은 미식의 역사를 꽃피웠다. 프렌치 프라이와 기름진 스테이크, 버터와 치즈 등을 한껏 먹으며 와인을 홀짝거린다. 다른 서구인에 비해 훨씬 많은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든 식사를 하면서도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현저히 낮다. 왜?

전문가들은 레드 와인(적포도주)에 주목했다. 바로 폴리페놀이라는 성분 때문. 포도의 씨와 껍질에 많은 폴리페놀은 '혈관 부식'을 막아주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한다. 하지만 꼭 와인 효과만은 아닐 듯. 프랑스인들은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음식과 와인을 즐긴다. 이런 낙천적인 식습관이 와인 못지않게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사상 최고액의 와인 경매가 새천년 직전 뉴욕 소더비에서 있었다. 노르웨이인 크리스텐 스베아스의 컬렉션으로 약 4만8000병이 한꺼번에 출품됐다. '밀레니엄 셀러'로 명명된 컬렉션의 낙찰가는 무려 1437만3866달러. 한화 167억5000만 원이 넘는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이전 기록 역시 스베아스가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은 컬렉션으로 1100만 달러에 달했다.

와인은 프랑스산, 특히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것을 최상급으로 친다. 그중에서도 1855년산이 '와인의 최고 학벌'.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 만국박람회 출품에 대비해 5개 와인 등급을 정했다. 지금은 샤토 오브리옹을 비롯한 5종이 1등급으로 와인에는 프랑스의 평등 개념이 절대 통하지 않는다.

병 단위 와인으로 가장 비싼 것은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대사 시절 구입해 자신의 이니셜을 적어 넣은 1787년산 샤토 마고가 꼽힌다. 추산가 50만 달러에 달하지만 불행히도 깨져 버려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최상급 와인일지라도 제조원가는 1만5000원 내외라고. 와인의 전통과 희귀성 값이라는 말씀.

현재 전 세계에서 팔리는 와인 730만 종 가운데 가장 비싼 게 1985년 부르고뉴산 '리슈부르 그랑 크뤼'로 한 병값이 자그마치 1770만 원에 이른다. 최고가 와인의 대명사로 알려진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1553만 원)'를 제쳤다. 와인 수입액이 위스키를 처음으로 넘어설 만큼 국내에도 열풍이 불고 있다. 와인은 음미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성질 급한 우리네 애주가에겐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