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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전승절이라는 이름의 덫 /김찬석

미국 외압설 등 논란…박 대통령 참석하기로, 열병식엔 불참 검토

한국의 현주소 대변…현대판 입조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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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 마침내 참석한다. 그런데 논란이 되고 있는 열병식 참석 여부는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중국이 전승절 행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열병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어정쩡한 결정이다.

이 장면에서 문득 광해군이 떠오른다. 여진족이 1616년 후금을 건국하고 공세를 강화하자 명은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조선으로서는 임진왜란 때 도움을 받았던 처지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광해군은 강홍립과 김경서에게 1만여 군사를 주면서 형세를 살펴 후금에 투항하라는 밀지를 내렸다. 강홍립은 후금과의 교전에서 궁수들로 하여금 화살촉을 빼고 쏘게 하는 방법으로 조선의 부득이한 참전을 알렸다고 한다. 형식은 파병이지만 내용은 파병이 아니다.

정부가 전승절 행사에의 참석과 불참, 전승절과 열병식의 분리 등으로 중심을 못 잡으니 국민들도 판단이 어려운 모양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느 나라와의 관계가 중요한가를 물었더니 미국(57%), 중국(30%) 순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에 대해서는 '참석하는 것이 좋다'가 69%,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가 18%였다.

전승절 참석 여부를 놓고 미국의 외압설이 불거지는 미묘한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국가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면, 전승절에도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반대다. '전승절 축하연'은 시진핑 중국주석이 연출한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라고 여겨진다. 주된 관객은 미국과 일본이며, 한국은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흥행을 위한 피에로쯤 된다.

중국은 50개국 정상에게 전승절 초청장을 발송했는데 박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받을 수도, 가장 늦게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사실까지 구태여 공개할 이유는 없다. 중국의 의도가 드러난다. 한국을 가장 대접하는 형식으로 한국이 전승절 참석 행렬의 선두에 서 줄 것을 압박한다. 미국이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자제를 요청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하자 중국 언론들은 이를 한국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유도했다. 그뿐만 아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논평을 통해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야 하는 5가지 이유를 적시했다.

5가지 이유는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자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국이며 조정자라는 것 등이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한중 간의 일이며 한미동맹을 이유로 한 미국의 관여는 한국의 자주성을 속박하는 것이라는 부분에 이르면 "중국은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스스로의 결정"이라는 부연설명을 거꾸로 해석해야할 판이다. 청일전쟁 후 체결된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이라며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중국이 미국과 일본에 대해 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새삼 강조한다.

전승절 참석 결정이 늦어진 것에 대해 국내 여론은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발표 후 내놓은 논평에서 결정이 다소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대미·대중 균형외교를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기라고 강조한 것도 그런 흐름이다. 이 같은 평가는 냉정히 따져보면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만큼이나 공허한 것이다. 21세기 오늘의 국제사회 현실에서 정경분리라는게 과연 통용 가능한 명제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은행(AIIB) 가입 당시에 충분히 체험했다. 그래서 자주외교, 균형외교라는 발표가 무색해진다.

우리에게는 전승절 행사 참석이 현대판 입조론(入朝論)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과거 중국은 걸핏하면 입조론으로 우리 조정과 국왕을 압박했다. 대표적으로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뒤 청은 조선이 항복 당시에 했던 약조들을 지키지 않으려는 기미가 보일라치면 인조가 청으로 직접 찾아와 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는 식의 입조론을 흘리곤 했다. 일국의 왕이 외국에 불려간다는 것은 왕의 자리는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는 뜻이다. 청은 그렇게 조선을 길들였다.

전승절 행사에는 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지만 이미 뱉은 말이다. 전승절에는 참석하되 열병식에는 가지 않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말은 쉽다. 미국 일본을 비롯해 서방 각국 정상의 불참이 예정된 상황에서 보조를 함께 할 파트너를 찾는 것도 어렵다. 설령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강홍립의 화살촉 없는 빈 화살이 되어 미국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의 전승절은 우리의 광복절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태평양전쟁 패전과 자국의 주권 회복을 축하하는 행사다. 축하 행사치고는 고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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