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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바다가 하늘이다

해양수산 기술은 국가 간 친선·국격 가늠하는 척도

부산, 세계수산대학 세워 개도국과 동반성장 이뤄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09-17 18:57:3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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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심해 한복판으로 나가, 해저 숲에 사는 사냥감을 추적합니다. 내 가축은 드넓은 바다 목장에서 안심하고 풀을 뜯지요. 나는 그곳에 나 혼자 경작하는 넓은 농장을 갖고 있습니다." 쥘 베른이 지은 소설 '해저 2만리'(1870)의 한 대목이다.

소설 속 잠수함은 바다에서 식량을 채집 가공하며, 조개의 족사(足絲·실 모양의 분비물)로 옷감을 짜고, 연체동물에서 염료를 뽑으며,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시설을 갖췄다. 어쩌면 현재 인류의 해양 과학기술은 아직도 쥘 베른의 꿈을 현실로 구현하는 수준에 머문 것 같다. 그만큼 그의 상상력이 뛰어났다는 말이다. '해저 2만리'는 한 작가의 상상력이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일깨워준 사례다.

■바다 목장의 꿈

소설 속 '바다 목장'은 어느덧 현실로 자리 잡았다. 한국 최초의 바다 목장은 1998년 경남 통영에 만들어졌다. 부산에 본부를 둔 국립수산과학원을 중심으로 국내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룩한 것이다.

더욱이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참다랑어(참치) 양식에 성공했다. 이제 한국의 바다 목장에서 참다랑어를 기른다는 말이다.

일본은 반세기 가까운 연구를 통해 양식에 성공했다. 1979년 참다랑어 수정란을 얻어냈고, 2000년대 초 양식에 성공했다. 한편 한국은 2006년 양식 계획을 처음 세운 뒤 10년 만에 성공을 거뒀다. 그만큼 한국 기술도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 과정에 일본이 보여준 태도는 전혀 '선진국'답지 못했다.

양식 연구의 출발은 연구용 수정란이나 치어를 얻는 건데, 일본은 수정란과 치어의 반출을 일절 금지했다. 일본이 이처럼 '야박하게' 나온 탓에 한국은 지중해 몰타공화국까지 가서 수정란을 수입했다. 비행시간만 20시간이 넘어 수정란의 신선도가 떨어졌다. 부화율이 절반도 안 됐고, 부화가 된 치어도 대부분 죽었단다. 이런 악조건을 이겨낸 건 오로지 국립수산과학원의 노력과 기술력 덕분이다.

앞으로 한국은 참다랑어 양식으로 한 해 5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일본에 많이 수출할 수 있다. 일본은 세계 참다랑어를 70% 이상 소비하는 나라이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자국의 수산물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참다랑어 양식의 종주국이 '미우나 고우나(?)' 한국산을 수입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정란이나 치어를 수출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수산업 후발주자를 야멸차게 대했던 일본을 제대로 부끄럽게 만들었다. 참치 얘기가 길었지만, 요점은 간단하다. 이제 해양수산 기술은 세계 국가 간의 친선과 '국격'을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는 거다.

■국격의 척도, 수산 기술

이런 가운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14일 로마에서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수산대학 설립을 위한 상호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는 거다. 세계수산대학은 개발도상국의 수산 전문가 양성 지원을 위해 세워질, 유엔 산하 공인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는 개도국 인력에 대한 '공적 개발 원조'의 하나로, 개도국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거로 예상된다.

유엔은 어째서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 이 일을 맡기려 할까. FAO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의 얘기를 들어보자. 세계수산대학 설립은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 경험을 다른 나라와 공유할 수 있는 매우 뜻깊은 일"이기에 한국 유치를 지지한다는 거다. 이것은 '칭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책임'을 묻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한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원양 대국'이지만, 한때 불법 어업국이었고, 국제사회 기여에 인색했다. 원양 대국의 품격이 모자랐다는 말이다. 앞으로 한국에 세계수산대학을 세워 개도국 발전을 지원하면,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 이미지로 바꿀 수 있다. '선도적인 국제 수산 기여국가'로 거듭난다는 거다.

이 점에서 부산의 의미는 크다. 부산은 세계 수산물 생산규모 12위를 차지하며, 국립수산과학원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을 아울렀다. 또 가까운 장래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도 이전해온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수산 전문대학이 20여 개뿐인 반면 부산에는 한국에서 바다를 가장 오래 연구하고 가르쳐온 대학이 있다. 이처럼 부산은 다른 도시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역량을 갖췄다. 다만 문제는 방향이다.

부산이 이끌 수산업이 과거의 일본처럼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정책 속에 머문다면, 정체하고 자멸할 것이다. 일본처럼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그 '꽉 막힌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부산이 운영할 세계수산대학은 수산자원이 풍부한 최빈국과 개발도상국의 기술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원칙을 꼭 지켜나가기 바란다. 그래야 그들과 함께하는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다.

■바닷속을 문화자원으로

이에 덧붙여 부산시에도 바란다. 부산시는 이참에 쥘 베른이 꿈꾼 것처럼 수산업이 신소재, 바이오에너지, 기능성 의약품 생산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과 좀 더 깊이 연계할 수 있게 격려하면 좋겠다. 그와 함께, 바닷속과 바다 생물을 관광자원으로, 문화자원으로 살리는 정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마침 기장에 국립부산과학관과 글로벌영상센터가 세워진다고 하니, 함께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글로벌영상센터가 계획한 '수중영화촬영소'는 부산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내륙 도시는 꿈 꿀 수 없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부산의 바닷속에는 정말 부산의 미래를 좌우할, 새로운 하늘이 있는 게 아닐까. 김지하 시인은 '바다 밑에 새파란 새 하늘이 있다'는 고대 아시아 신화를 말한 적이 있는데, 요즘 부쩍 그 말이 자주 생각난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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