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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톨레랑스'의 시험대

전장·일상 공간의 구분 모호…'칼리프 국가' 응징에 한계

자유 평등 박애 보편적 가치, 폭력 박멸하는 최상의 무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1-19 19:42:2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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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사는 이웃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도 경계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면, 이보다 슬픈 일이 있을까. 압델하미드 아바우드는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의 총책으로 추정되는 청년이다. 그가 '극단주의'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의 아버지조차 모른다. 또 같은 날 카페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른 압데슬람 형제의 가족은 그들이 극단주의자인지 몰랐고, TV를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테러범이 항상 우리 곁에 산다고 느끼게 만들며, 이런 사실로 고통을 받게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른 일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 아닐까. 이제 전방과 후방의 구분도, 전장과 일상 공간의 구분도 어렵다. IS의 움직임이 쉽게 '분쇄'되지 않을 것 같은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모호한 전선

현재 IS의 테러에 대해 전 세계가 응징에 나섰다. 파리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한 프랑스에 유럽연합(EU)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도 힘을 더한 것이다. 이렇게 미국 프랑스 러시아가 힘을 합친 것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맞서 연합한 뒤로 처음인 것 같다. 이는 IS의 수장인 '알바그다디'가 과거의 히틀러와 같은 대상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선이 명확하지 않다. 파리 테러처럼 내국인의 협조로 테러가 이뤄진다는 면에서 전선은 국경을 넘고, 일상 공간과 전장의 경계를 넘어 모호하게 형성된다. 그만큼 아군과 적군의 식별도 어렵고, 슬로건도 모호하다. 2차 세계대전 때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은 '히틀러 타도'란 구호로 단결했다.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인 진영들이 단순한 구호 하나로 모였던 거다.

당시 미국에는 '벌레를 죽이자'(Kill the Germ)는 구호가 유행하기도 했다. 벌레(germ)와 독일(Germany)의 영어 발음이 유사하다는 데서 착안한 구호다. 하지만 이제 '벌레'는 먼 나라에만 살지 않는다. 난민 이주민 이웃 가족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리아 내 IS 거점인 락까를 연일 폭격해도 그들이 쉽게 '박멸'되지 않을 걸로 보이는 이유다. 영화 007의 '스펙터' 조직처럼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 점에서 프랑스 언론과 지식인들은 군사적 대응뿐 아니라, 사상과 언어의 대응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국인이 IS에 동조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사상과 언어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IS의 언어가 간결하면서도 힘 있고 선동적인 반면,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프랑스 철학자 살라자르(Philippe-Joseph Salazar)는 그 이유를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그는 올해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 전사)의 선동적 언어를 분석한 책 '무장한 언어'를 펴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언어라는 무기

IS의 언어는 신의 말씀처럼 들리지만, 프랑스 언어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위에 세워졌다. 또 IS의 언어가 신의 부름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전제한다면, 프랑스는 시민의 '불복종'을 전제한다. 그래서 프랑스와 같은 민주국가는 '강하고 통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거다.

"민주국가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섬세함과 복잡함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의 약점입니다. 전쟁은 단순한 형식을 갖춘 언어의 힘을 요구하나, 지금 우리에겐 그런 언어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투명하고 정확한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살라자르는 자국의 '어휘'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말하며 IS의 행위를 '테러'가 아닌 '전쟁'으로 불렀다. 일반적 테러가 '공포'를 통해 사회질서의 마비를 노린다면, 이것은 '영토'의 유지 확장을 꾀하는 전쟁행위란 거다.

이런 생각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지난 16일 올랑드 대통령이 파리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한 것은 이 생각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는 또한 IS를 '칼리프(제정일치) 국가'로 부르자고 말한다. 다른 이슬람국가와 IS를 구분하고, 특수성을 부각하는 어휘 사용이다.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김씨 왕조'로 불러야 분명하게 그 정체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14년 전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미국의 9·11 테러를 '인과응보'처럼 묘사했다. 미국이 천박한 상품경제의 '세계화'로 세계 각국의 문화를 파괴한 것에 대한 부메랑 효과란 거다. 하지만 현재 파리 테러를 인과응보로 보는 프랑스인은 드문 것 같다. 오히려 프랑스가 공격받는 것은 진짜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며 이 정신 속에서 올바른 언어를 가다듬고, 칼리프 독단주의와 맞서자는 살라자르의 생각이 힘을 얻는 걸로 보인다.

■21세기형 계몽주의

이런 생각은 18세기 계몽주의를 계승한다. 계몽주의는 밝은 정신으로 몽매한 독단주의에 맞서려 했다. 또 독단주의에 맞서기 때문에 톨레랑스(관용)를 추구했다. 그것은 자유 평등 박애를 해치지 않는 한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참는 것을 말한다. 물론 테러범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프랑스인은 없을 거다. '칼리프 국가'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프랑스 사회는 톨레랑스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것 같다. 한 어린이잡지는 테러범이 기획한 공포에 굴복하지 말라고 격려하며 일반 이슬람신자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항상 존중하자고 말한다. 폭력의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적 정신으로 이기자는 거다. 그리고 이번 테러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는 테러범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내 증오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증오에 사로잡혀 정신이 황폐해지는 것은 바로 그들이 바라는 것. 그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타락하는 것. 그래서 내 증오를 선물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톨레랑스의 새 단계다. 사랑하진 않아도 미워하진 않겠다는 마음이 톨레랑스의 바탕이니까. 파리 테러는 이처럼 인류를 톨레랑스의 새로운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필로아트랩대표·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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