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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자

교수신문 발표 올해의 한자성어 15년째 모두 부정적 내용

편향에서 벗어나 사안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지성적 비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2-31 19:17:2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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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다음 해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이 나온다. 경제·사회 분야에서 한 해를 이끈 경향을 분석해 다음 해 경향을 예측하는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책이 매번 날개 돋친 것처럼 팔리는 데 비해 그 책 내용이 얼마나 적중했나를 따져보는 사람은 적다는 거다.

또 연말이면 지식인의 이목을 끄는 것이 있는데, 바로 '교수신문'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다.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사자성어 하나를 선정한 것이다.

그동안 뽑은 글귀를 따져보니 기분이 씁쓸하다. 글귀 뜻은 단순하지만, 일반 시민이 알 만한 글귀가 적고, 중국 고전 속 깊숙한 곳에서 따온 게 대부분이다. 쉽게 할 말을 유식한 체하며 어렵게 말하는 것을 낮잡아 '문자 쓴다'고 말한다. '교수신문' 사자성어를 보면 조선시대 선비가 문자 쓰는 것 같다. 글귀 내용도 아쉽다. 2001년부터 발표했으니 개수로는 15개이며, 시간적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걸쳐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15개 글귀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부정적이다. 그럼, 지난 15년은 줄곧 혼란과 퇴보를 거듭했다는 뜻일까.

■지성계의 부정적 '세상읽기'

한국은 그 기간 동안 영화, 방송, 음악, 패션이 눈부시게 발전해 오늘날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류'를 만들었다. 또 1997년에 시작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도 이겨냈으며 올해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고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를 함께 강화해 경제·안보 외교 수준을 한층 더 높였다.

그런데도 지난달 21일 '교수신문'이 뽑은 글귀는 '혼용무도'(昏庸無道)다. 나라가 암흑에 덮인 것처럼 어지럽다는 뜻이란다. 이를 본 야당 정치인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나타내는 너무도 적확한 표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경고'라며 맞장구쳤지만, 야당은 먼저 자신의 집권 시기에 대한 평가부터 살펴보기 바란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오리무중, 이합집산, 또 노무현 정부 때에는 우왕좌왕, 당동벌이(黨同伐異,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무조건 배격함), 상화하택(上火下澤 : 사물이 서로 이반 분열함), 밀운불우(密雲不雨 :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 자기기인(自欺欺人 :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임)이란 사자성어가 뽑혔다. 물론 필자도 한국을 지상낙원으로 여기진 않으나, 이런 평가만 보면 한국은 망해도 진작 망한 나라다.

비판도 이쯤 되면 비난이 아닐까. 문제는 사자성어를 내놓은 자신은 이 정부나 사회와 무관한 듯 얘기하는 '유체이탈' 화법이다. 그야말로 '훈장질' '선비질'이다. 나라가 어려워도 뒷짐 지고 '에헴'하며 공허한 원칙만 읊조리는 선비가 떠오르지 않는가. 건설보다는 파괴가 쉽고, 대안 제시보다는 비판이 쉽다. '교수신문' 사자성어도 참 쉽게 뽑는 것 같다. 정부를 '까기만' 하면 박수 받는 분위기라고 할까.

필자는 이런 태도가 한국 지성계 전반에 퍼졌다고 느낀다. 세상을 부정적인 눈으로만 보는 관점이 주류란 말이다. 그 편향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은 범법 행위에 대한 관용이다. 한국 지성계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의 폭력에는 분노를 쏟아내지만, 범법자에게는 한없는 관용정신을 보여준다. '혼용무도'란 말처럼 지금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책임을 모두 정부에게 돌리는 것은 편향된 것이다.

■모든 것이 정부 탓?

공권력을 지키는 경찰이 폭력 시위대 앞에서 '인간 샌드백'으로 전락했다. 국가 전복 테러를 모의하던 집단이 큰길에서 '이석기 석방' '박근혜 처형'을 외친다. 평균 연봉 1억 원이라는 상위 3% '귀족노조'가 '노동개악'을 저지하겠다며 도시를 마비시키고, 노동법 논의 자체를 막으려 한다. 지성계는 어째서 이런 폭력엔 침묵하나.

본질적으로 주류보다는 비주류, 인사이더보다는 아웃사이더, 양지보다는 그늘에 마음을 주게 마련인 지성인을 굳이 이념 성향으로 가른다면 좌파 성향이 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지성인을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단지 사안에 따라 잘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관점이 아쉽다는 거다.

지난달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격상된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지성계 상당수는 오히려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필자는 경제학을 잘 몰라도 이런 지표가 경제의 전부가 아니란 것쯤은 안다. 다만 올바른 지성인이라면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그런 지표에 안주하지 말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지 1997년 외환위기 앞에도 신용등급이 올랐다며, 등급 격상의 의미를 무조건 부정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성계의 부정적 태도는 꽤 깊다. 만약 지난달 신용등급이 떨어졌으면 이들은 또 정부 탓을 하지 않았을까. 미국의 정치평론가 '앤 코울터'는 미국 자유주의 진영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평쟁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거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에 대한 그들의 불평은 지겹다고 말한다. 한국 지성계의 사회 비판이 이처럼 지겨운 불평 따위로 들리면 곤란하지 않겠나.

■비판과 불평 사이

'혼용무도'에서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인 '혼군'과 '용군'을 합친 말로, 사회 혼란의 책임을 군주에게 묻는 말이다. 이제 지성계도 스스로 그 혼란을 더하고 있진 않은지 자문할 때다. 부정적 편향에서 벗어나 잘한 걸 잘했다고 말하고,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지성인의 비판적 태도라고 믿는다.

부정적 편향이 '확증 편향'으로 발전하면 큰 오류를 낳을 수 있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현실인식을 말한다. 우리는 조선시대 학자가 혼군으로 확신한 군주가 광해군이란 걸 안다. 그리고 오늘날 광해군의 의미가 재조명된다는 것도 안다. 지성인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이유다.

필로아트랩 대표·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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