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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햇볕정책의 그늘

무작정 대화 계속하자 주장은 北에 시간만 벌어줄 뿐

한국이 용기를 내서 새로운 세계 대북정책 이끌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2-18 18:51:5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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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전 세계가 탈냉전 시대로 향한 지 수십 년인데, 한반도에는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하며 '대화와 협상'의 깃발을 다시 추켜든 거다. 지금 이 시점에도 '대화'만을 되뇌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합리적인 대화 상대라고 믿는가. 또 북한 핵미사일이 정말 한국이 아닌 미국을 겨눌 뿐이라고 확신하는가.

이젠 햇볕정책의 대안을 내놔야 한다.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의 말을 되새겨보자. "김정일 위원장은 북핵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2004년 정세현 장관) "미국은 북한이 9·19 공동성명에서 '핵 포기' 결단을 내린 것으로 믿어야 한다."(2005년 정동영 장관)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이 있다는 정보도 없고, 그 계획을 추진한다는 정보도 없다."(2007년 이재정 장관)

■햇볕정책의 실책

정동영 전 장관은 현 정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2005년 당시의 발언부터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 그 발언을 한 이듬해 2006년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다. 21세기를 사는 한반도에 아직 냉전이 지속되는 까닭은 간단하다. 20세기와 함께 사라졌어야 할 북한의 기형적 전체주의 체제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사실상 북한 체제를 살리고, 핵 개발 자금과 시간을 벌어준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햇볕정책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햇볕정책이 한창일 때에 두 번의 연평해전이 일어나고 핵 실험이 진행됐다는 사실에 침묵한다. 오히려 '기왕 일이 이렇게 됐으니 북핵을 인정하는 게 평화의 길'이라며 남북 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미 수교를 맺어야 한다고 외친다.

평화협정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믿을 만한 집단일 때의 얘기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평화협정은 '휴지조각'일뿐이다. 1973년 1월,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파리 평화협정을 맺고 베트남에서 물러났다. 2년 뒤 1975년 1월, 월맹(북베트남)은 월남을 침공했고, 4월 30일 월맹은 승전을 선언했다.

이 케케묵은 얘기를 왜 들먹이느냐고? 북한 체제가 케케묵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이미 변했다.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던 1990년부터 베트남은 개방정책을 펼치며 세계 역사의 흐름에 합류했지만, 북한은 과거 베트남의 통일 전략을 버렸다는 증거를 보여준 적이 없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평화협정을 못 믿는 이유다.

■개성공단의 시대착오

개성공단은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 속에 북한 체제에 현금을 바친 곳이었다. 북한 노동자들은 임금의 극히 일부분만 받았다. 햇볕정책은 어째서 이런 인권 유린 상황을 당연시할까. 이곳이 '평화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대체 그런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만약 '전체주의라도 좋아, 노예노동이라도 좋아, 남북당국이 평화로우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한국 노동계와 지성계는 도덕적 타락에 빠진 것이다. 세계적 표준, 인류 보편적 원칙을 도외시한 평화는 추악한 평화다. 이는 곧 한국 사회가 북한의 기형적 체제를 묵인하고, 거기에 굴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문화계와 지성계의 주류는 공산주의 계열이었다. 이런 가운데 1949년 소련에 '강제 수용소'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1950년 소련이 한국전쟁을 기획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지성계는 흔들린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공산당과 결별하며 반공산주의를 천명했고, 작가 알베르 카뮈는 공산주의를 비판한 저술 '반항하는 인간'(1951)을 펴낸다.

진정한 '반항인'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굴욕을 거부하는 반면 권력을 쟁취하려는 '혁명가'는 미래 인류의 행복이란 이름으로 투옥과 살인을 정당화한다는 거다. 이 점에서 한국 '진보'의 태도는 굴욕적이었다. 북한 체제의 모순과 햇볕정책의 오류에 눈감았다. 그렇게 인간의 존엄을 저버리며 평화를 구걸한 결과 햇볕은 북한체제에 바치는 '조공'으로 끝났다.

거기에 남북한 주민의 존엄은 없었다. 개성공단은 북한 노동자를 착취하고, 북한 체제가 유사시에 한국 기업가를 인질로 삼는 곳이었다. 정말 햇볕정책이 제 뜻을 펼치려면 세계 표준에 맞는 거래와 계약으로 공단을 꾸렸어야 한다. 거기서 길러진 합리적 사고가 북한 전역에 퍼지게 했어야 한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다.

■햇볕 아니면 전쟁?

햇볕정책이 바라는 평화는 부도덕한 평화다. 또 북한 요구를 계속 수용하고 물러서다 보면 우리는 막다른 길에 몰리고, 무너질 수 있다. 그럼 진짜 평화를 얻는 길은 뭘까. "간단합니다. '우리에겐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당신들이 침범하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할 용기를 내는 겁니다." 1964년 로널드 레이건의 말이다.

용기를 내야 평화가 온다? 현재 북한은 세계인의 분노와 경멸의 대상이다. 반면 한국은 세계경제와 현대 문명체제에 뿌리내린 가치를 추구하며, 국제 공조를 이룬다. 한국이 용기를 낼 때에 평화가 찾아오는 이유다. 이번 개성공단 중단은 그 용기를 보여준 상징이다. 이에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우리를 격려하며, 한반도 방어와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 세계질서가 더는 북한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햇볕정책 지지자는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김정은 정권이 다음 단계 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 무작정 대화를 계속하자는 주장은 북한에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햇볕정책의 실책은 한 번으로 족하다.

필로아트랩 대표·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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