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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도둑의 경제학

조선시대 국가·지주 수탈 시달리던 농민들 군도 형성

우리사회 부의 양극화 심화…정치가 문제해결 나서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4-21 19:11:1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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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재물을 훔치거나 빼앗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사회는 없다. 어떤 사회도 절도와 강도를 법으로 처벌한다. 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행위가 용납될 경우, 사회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절도와 강도가 없던 시대가 없었다. 조선시대를 예로 들자면, 500년 내내 절도와 강도가 들끓었다.
   
'조선왕조실록'을 펼쳐 보면,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소소한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은 물론이고, 밤에 횃불을 들고 떼를 지어 들이닥치는 명화적이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없었던 적은 한 순간도 없다. 명화적은 심지어 서울에까지 출몰하여 왕과 조정의 관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1728년 '이인좌의 난'에는 전라도의 변산반도에 산채를 짓고 웅거해 있던 명화적이 대거 참여하기도 하였다.

명화적은 떼도둑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형태의 떼도둑은 찾아볼 수 없다. 지방 관아를 습격해 창고를 털고, 사족과 지주의 재산을 빼앗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명화적, 곧 군도(群盜)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군도는 원래 대부분 농민이었다. 다만 그들은 경작할 토지를 상실한 농민이었다.

군도의 활동이 특히 왕성했던 조선 후기의 경우, 겸병가(兼倂家)라고 불리는 거대한 토지소유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토지는 농민의 것을 삼킨 것이었다. 국가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은 흉년이 들면 사족과 지주에게 땅을 헐값으로 넘기고 소작인이 되었다. 당연히 국가는 농민의 편이 아니었기에 농민이 땅을 빼앗기는 것을 수수방관할 뿐 어떤 근본적인 대책도 내놓지 못하였다.

소작인은 지주에게 수확물의 50%를, 국가에 지세 10%를 바쳤다. 거기에 다음 해에 파종할 종자와 환곡의 이자를 빼면 10, 20%도 남지 않았다. 흉년이 들면 유민이 되어 나라를 떠돌다가 길거리에서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토지에서 내쫓긴 사람들 중 용력이 있는 사람들은 뭉쳐서 군도가 되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사족과 지주, 부호의 재산을 털었다. 체제의 입장에서 군도의 행위는 범죄였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불공평한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이런 이유로 농민의 토지를 빼앗은 자, 또 그것을 막기는커녕 방조한 사족체제에 군도가 되어 저항하는 행위는 나름의 정당성을 갖게 되었다. 군도는 민중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고 있었다.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에 씌워진 의적의 이미지는 그렇게 하여 형성된 것이었다. 이들은 나름의 정의를 선포하고 있었다. 한문 단편 '월출도'는 군도가 기계(奇計)로 수백만 금의 재산을 축적한 영남의 부잣집을 터는 이야기인데, 군도의 대장은 주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인장, 국량이 작으시군요. 이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실어갈 수 있는 가벼운 재물에 불과할 것이요. 토지·가축·집채·양곡이야 그대로 남습니다. 그야 잃어버릴 재물도 불소하다 하겠지만, 수년 이내에 충분히 회복되겠지요. 심히 우려하실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또한 재물이란 천하의 공번된 것이오.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쓰는 사람이 있고,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 가져가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라, 주인 같은 분은 쌓아 두는 사람이요, 지키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사람은 쓰는 사람이요, 가져가는 사람이라 할 터이지요. 줄어들고 자라나는 이치와 차고 기우는 변화는 곧 조화의 상도(常道)라. 주인장 역시 이런 조화 중에 한낱 기생하는 셈이지요. 어찌 자라나기만 하고 줄어들지 않으며 차기만 하고 기울어지진 않겠소?"

재물을 빼앗는 논리는 무엇인가. '재물은 천하의 공번된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의 재산은 부자가 생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제도 속에서 그의 소유가 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재물은 본질적으로 어떤 특정한 개인에 의해 사유될 수 없다! 이것이 도둑의 논리이고, 이 논리에 따라 재물을 빼앗아 가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의 사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어갈 수 있는 가벼운 것은 가져가더라도 당신의 재산은 여전히 남고 수년이면 다시 복구될 것이다. 어떤가. 약탈은 약탈이 아니라, 공정한 분배를 위한 행위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또 다른 작품 '홍길동 이후'에서 군도의 대장 심 진사는 안동의 거부 이 진사의 집을 털기로 하고, 그가 쉰에 낳은 어린 아들을 납치한 뒤 재산을 요구한다.

"그대는 곡식을 만 섬이나 쌓아 두고 단 한 명의 곤궁한 사람도 구제하지 않았으며 전답 천 묘(畝)를 차지하였지만 백년의 수한을 늘리지 못하고 마침내 한 알 한 알 피땀 어린 곡식의 알을 흙으로 돌아가 썩게 한단 말이요. 그대의 아들이 앙화를 받음이 이치에 마땅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신명의 뜻을 받아 납치해 온 것이오. 그대는 인생이 유수 같음을 슬퍼하고 아들을 사랑하는 천륜에 마음이 쓰인다면 급히 더럽고 인색한 심보를 고쳐야 하리로다. 그리고 보시의 덕을 보이고자 할진대 그대의 가진 바 재산을 반분해서 아무 강변에 쌓아 두기 바라오. 그것을 운반해 오는 즉시 아기도령을 돌려보내겠소."

만 섬의 곡식을 쌓아놓고 한 명의 곤궁한 사람도 구제하지 않는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인가. 도둑의 논리는 불평등의 모순을 꿰뚫는다. 정의를 지향하는 것은 부자의 경제학이 아니라, 도둑의 경제학이다. 오늘날에 비추어 말하자면,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비정규직 실업자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우리 사회는 부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현실이 되었다. 과거에는 노력 여하에 따라 좋은 직장을 얻고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 계층의 이동도 가능했지만, 이제는 사다리가 끊겼다.

   
이번 총선은 교묘한 논리와 언설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자들에 대한 경고다. 정치가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다시 도둑의 경제학이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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