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큰 물은 낙동강인데,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일제히 모여들어 물 한 방울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뭉치어 부름이 있으면 화합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치는 이치이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낙동강관은 아주 탁견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해 영남땅 천리벌판을 적시는 낙동강의 흐름과 덕성을 이처럼 명쾌하게 요약한 글은 찾기 힘들다. 이 강이 오늘날 영남권 1300만 유역민의 생명수란 점을 떠올리면 성호의 예지가 놀랍기만 하다.
부산은 낙동강의 최종 집수역이다. 이를테면 낙동 어미의 맏아들 격이다. 안동 구미 대구 진주 합천 창녕 밀양 김해 양산 등 낙동강 유역 어느 도시가 중요하지 않으랴만, 이 모든 것을 받아 안는 부산에 견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산은 낙동강 전체를 읽으려 하지도, 끌어안으려 하지도 않았다. 고작 쳐다본 것이 양산천 합류부에서 하굿둑까지 약 24㎞ 60리를 부산권 낙동강으로 아우른 정도다.
시대가 변했음인가. 부산이 '서부산 낙동강'을 오달지게 챙기고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서부산 개발 드라이브 이후의 변화다. 이곳엔 지금 에코델타시티다, 서부산 글로벌시티다, 명지국제신도시다 하는 대형 사업들이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다. 낙동강 델타지역의 대변화다. 서 시장은 국가적 과제인 낙동강 하굿둑 전면 개방까지 추진 중이다. 식수와 농공용수 확보 등 민감한 문제가 내재돼 있지만, '강을 흐르게 한다'는 점에선 고무적인 정책이다.
이에 발맞춰, 부산발전연구원은 서부산 낙동강 유역의 인문학 및 문화자산 발굴을 위해 시민총서를 발주하고, 별도의 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자원화·콘텐츠화의 가능성과 대안을 찾는다는 취지다. 늦긴 했지만 필요하고 기대를 갖게 하는 작업들이다.
하지만 시각은 여전히 '부산권'에 갇혀 있다. 갑자기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서부산 낙동강'이란 개념부터 낯설다. '삼국사기'에는 낙동강 하류를 '황산강(黃山江)'이라 부르고 있는데, 지금은 그런 별칭은커녕 지리적 개념조차 오락가락이다. 좁은 대롱으로 큰 것을 보려니 모양새가 잡히지 않는 형국이다.
낙동강에 흐르는 것이 물과 모래뿐이랴. 그것밖에 보지 못한다면 그 정도의 정책밖에 안 나온다. 강이 낳은 거대한 델타와 토지에만 주목하면 그 수준의 건물밖에 짓지 못한다. 숲을 보고 강을 보아야 하는데, 나무만 보고 물만 보고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깊은 통찰과 비전 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강은 인간세상의 거울이다. 강물은 인간세상의 오탁악세(五濁惡世)를 거쳐 나온 물이다. 노도와 같은 강물은 도시의 응전을 낳았고, 유순한 강물은 고매한 정신을 잉태했다. 강변 문화는 그렇게 길러지고 숙성됐다. 강에는 유역의 역사·문화사·산업사·생활사·미래사가 흐른다. 1300리의 긴 여정을 거쳐 부산에 닿는 낙동강에는 바로 이런 의미와 가치들이 어우러져 울렁출렁 흐르는 것이다.
부산이 살피고 챙겨야 할 것은 자명하다. 우선 부산권 낙동강의 개념과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낙동강이 한민족의 대하(大河)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꼬랑지를 잡고 흔들어서는 얻을 게 뻔하다.
그 다음, 낙동강 정신을 챙겨야 한다. 가야·신라문화와 서원으로 대변되는 조선의 선비문화, 물류(物流)·문류(文流)·인류(人流)가 흐른 뱃길과 나루터 문화, 경관과 생태를 챙겨야 한다. 나아가 강 교육과 체험, 여행문화도 만들어가야 한다. 모두 부산의 역할이다. 최종 집수역은 유역의 다양한 문화가 흘러들어 모이는 자리다. 산업과 자연의 공존 철학을 묻고, 낙동강에 흐르는 가치를 미래에 실어나르는 작업도 필요할 테다. 부산이 낙동강 맏아들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낙동강에 젖먹이처럼 달라붙어 있던 수백 개의 나루터는 그 자체로 한민족사의 축도다.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의 어머니가 건너온 곳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단히 지워버렸다. 부산권에만 60~70개의 나루터가 있었다는데, 누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가. 마지막 뱃사공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급하다. 세월은 증언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런 인문·생활 자산을 챙기지 않고는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올린다 해도 그건 겉멋일 뿐이다.
이런 작업들을 결집·정리하려면 '대(大)낙동강 연구소'와 '낙동강 문화·생태 자료관(박물관)'같은 그릇이 필요하다. 국가하천을 다루는 문제니 제대로 설계가 된다면 국비 투입도 가능하리라 본다. 지역의 학계와 정치권, 시민사회가 힘을 모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성호가 설파한 '인심이 한데 뭉치어 부름이 있으면 화합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치는 이치'를 새롭게 생각해볼 때다. 크게 봐야 큰 것을 얻는다. 낙동강은 부산의 대하다! 부산이 그 ' 대하 드라마'를 써야 한다.
대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