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촌은 법으로 정해진 친족이라는 집단의 경계선이다. 친족이지만 멀다. 나를 기준으로 같은 고조할아버지를 둔 이가 8촌이다. 고조할아버지라면 세대당 25년으로 쳐서 4세대 100년 전의 조상이다. 할아버지와도 떨어져 사는 신세대들에게 8촌은 남과 다를 바 없는 사이인 것이다. 8촌이 이럴 지경이면 8촌을 넘긴 친척은 지구로 치면 태양계 바깥 세계다.
그런데도 필요하면 8촌이 훨씬 넘는 친척들도 곧잘 찾아낸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최익현 역)은 종친회에 줄을 대 종친인 부장검사를 찾아간다. 종친회 간부가 부장검사에게 최익현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느그 아부지, 그러니까 내 행님의 할부지의 9촌 동생의 손자가 바로 익현 씨인기라". 증조부의 9촌의 손자라면 도합 14촌이다. 14촌이라도 남보다는 훨씬 낫다고 믿는게 한국사회다.
8촌이 친족과 남의 경계선이라면 4촌은 가족과 친척의 경계선이다. 가족이라 하기엔 거리감이 있고, 친척이라고 하기엔 가깝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이 미묘한 4촌 관계를 설명해준다. 왜 6촌도 8촌도 아닌 4촌일까. 1촌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픈 배도 낫는다. 2촌인 형제가 땅을 사도 비슷하다. 그런데 4촌이 땅을 사면 좋아하기도, 무관심하기도 애매하다. 배가 아픈 소갈머리가 반쯤은 이해가 된다.
새누리당 박인숙(서울 송파갑) 의원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하고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직을 사퇴했다. 박 의원은 5촌 조카를 5급 비서관으로, 동서를 인턴 직원으로 각각 채용했다. 이를 계기로 새누리당은 윤리 규정을 강화해 4촌 이내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8촌까지로 확대했다. 물론 근본해결책은 아니다. 4촌 규정을 피해 5촌을 채용하듯, 8촌 규정을 피해 9촌 10촌을 발굴할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을 무급으로 전환하면 된다. 현재 국회의원은 4급 2명, 5급 2명, 6급 7급 9급 3명에 인턴 2명까지 9명의 급여를 세금으로 지급받고 있다. 국회의원이 자기 돈으로 보좌진을 채용한다면 사돈의 8촌을 데려다 쓴들 누가 입을 대겠는가.
이 와중에 지난 23일 김해영(부산 연제) 의원을 대표발의자로 한 여야 18명의 의원이 보좌진을 늘리는 내용의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턴 2명을 8급 비서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친인척 채용 금지 쉽지 않겠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