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에는 '뉴지엄(Newseum)'이란 미디어 박물관이 있다. 이곳의 세계 커뮤니케이션 역사관에 기록된 문구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은 1234년 한국에서 인쇄된 책이다…'. 그게 고려 인종 때 최윤의가 지었다는 '상정고금예문'이다. 뉴지엄 내부 벽면에는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링컨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국민에게 사실을 알려주어라. 그러면 나라가 안전할 것이다(Let the people know the facts, and the country will be safe).' 사실 기록이 곧 민주주의라는 언명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말해주듯, 한국은 기록문화 강국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13점이 이미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편찬의 공정성, 관리의 엄격성, 보존의 치열성 면에서 세계 기록유산의 백미로 꼽힌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혼이자 얼이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17만 2000여 일) 동안 일어난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했는데, 단일왕조의 기록으로는 세계 최장이다. 실록의 편찬-제작-수난-사수-보존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숨 막히는 드라마다.
바로 이 조선왕조실록의 원본이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보존돼 있다. 태백산 사고본(국보151-2호)으로, 모두 848책 1707권이다. 원래 경북 봉화군 태백산 사고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와 경성제대를 거쳐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다가 1985년 부산으로 옮겨졌다.
최근 부산기록관을 찾았다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부산기록관이 가까이 있는데도 잘 몰랐다는 것과, 그곳에 엄청난 기록물들이 보관·전시·공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산기록관은 연제구 거제2동 아시아드 경기장 뒤편 백양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1984년에 들어섰다는 데도 낯설고 생소한 것은 기록관이 갖는 보안성 탓도 있지만, 그만큼 지역사회와 소통이 없었다는 얘기다.
부산기록관을 둘러보면서 호기심은 경이로움으로 변했다. 본관 옆 뜰에는 높이 6.39m의 광개토대왕릉비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그 크기와 위용, 웅혼한 필체는 보는 이를 압도했다. 본관 1층 기록문화전시관의 콘텐츠와 디스플레이도 좋았다.
부산기록관에는 실록 등 국보급 역사기록과 대통령 기록물, 외교문서, 영남권 공공기록물, 전자디스크·마이크로필름 등 각종 매체 원본이 보존돼 있다. 김재순 부산기록관 관장은 "일제 강점기 지적 원도와 당시 잡범(雜犯)들의 기록, 독립운동가 판결문 등 희귀 자료도 있다"고 귀띔했다. 자료에 목말라하는 연구자들이 눈독을 들일만했다.
알게 모르게 학생 견학이 많은 것 같았다. 부산기록관 측의 자료를 보니 연간 1만5000명의 학생이 체험학습을 위해 찾았고, 일반 민원 및 기관협조가 연간 17만 건에 달했다. 하지만 학술 연구자들의 방문은 극히 미미했다. 자료 공개·공유가 안 된 탓이다.
부산기록관 측은 몇 가지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본관 뒤편에 '실록 문화의 숲'을 조성해 학생들의 수학여행 필수코스로 만든다는 것이 그 하나다. 실록이 교육의 원천 자료이고, 스토리텔링 보고라는 점에서 솔깃한 프로젝트로 와닿았다. 실록의 제작-수난-보존 과정의 이야기나, 보존에 쓰이는 천궁과 창포의 생태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록을 통해 보존과학을 배우게 하고, 기록문화 투어코스를 만들어 기록·글쓰기 체험을 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모양이다. 앞으로 자유학기제가 확대되면 이 같은 참여형 체험학습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실록 문화의 숲'은 문화 교육 관광차원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가기관이 나서 의미 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부산시와 시교육청의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기록관 측은 오는 10월 민간기록 공모전도 열 계획이다. 이런 일들은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여야 성과가 만들어진다.
그나저나 부산기록원은 지금 큰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만덕3터널 왕복 4차로 연결도로가 부산기록원 왼쪽 담장 바로 옆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당초 기록관에서 30m 떨어진 도로가 인근 아파트 민원에 밀려 1m 정도로 붙어 높이 30m의 옹벽도로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이 도로에 하루 4만여 대의 차량이 다니게 되면 국가 상징시설의 경관 훼손은 물론 소음 진동으로 기록관의 보존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기록관 측은 도로 위치를 아파트와 기록관 중간 지점으로 하는 등 합리적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도로개설 문제가 조용히 지내던 부산기록관을 깨운 것은 묘한 역설이다. 어쨌든 부산기록관에 잠자고 있던 '보물'들이 눈을 뜬다면 불감청고소원이다. 기록문화를 다시 보고 콘텐츠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몹시 바라던 바' 아닌가.
대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