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는 천혜의 요새다. 동도 서도 고도 세 개의 섬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100만 평의 바다는 호수에 다름없다. 중국을 거쳐 조선과 일본 앞바다까지 헤집고 다니던 영국 해군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 1845년 영국 군함 사마랑호는 거문도를 발견하고 자국 해군장관의 이름을 따 해밀튼항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885년 3월 영국 해군은 거문도를 자기네 땅인 양 꿰차고 앉아 만 2년을 머물렀다.
일본 나가사키 현에는 오도열도(五島列島)가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섬이다. 6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이곳에 1989년 난리가 났다. 베트남과 중국 등으로부터 온 밀항자와 난민 등 3000여 명이 북적거리게 된 것이다. 난민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일본 영토인 탓에 피난민 수용소가 된 것이다.
섬은 이처럼 영토 차원, 군사 차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전쟁이 끝난 후 체결하는 평화협상 과정에서 영토 문제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섬에 대한 처리다. 태평양전쟁 후인 1952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SFPT)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SFPT 2조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며 퀠파트(Quelpart), 포트 해밀튼(Port Hamilton), 다줄렛(Dagelet)을 포함해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는 간 곳이 없고 퀠파트, 해밀튼, 다줄렛이라는 영어식 이름을 달고 있다. 주권을 상실하면 가장 먼저 섬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최근 영토 주권의 측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우리 섬은 동해의 독도와 남해의 이어도다. 서해는 조용했다. 해적질에 가까운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인해 서해 섬들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충남 태안군 격렬비열도는 중국 산둥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하지만 1994년 등대에 근무하던 인원마저 철수한 뒤 20년 이상 무인도로 방치돼 왔다.
그런 격렬비열도에 탐욕스러운 중국 자본이 군침을 흘리며 덤벼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4년 3개 섬 중 개인 소유인 2개 섬을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소유주들에게 시세의 10배 이상 가격을 제시했던 모양이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해 6월 등대원 4명을 파견해 일단 유인도로 복귀시켰다.
지난달 해양수산부와 군·경찰, 지자체가 함께 격렬비열도 종합관리방안 워크숍을 개최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기지화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늦은 대응이다. 이제라도 서해의 우리 섬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야 하겠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