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수사는 완곡하다.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 현안에 상당한 합의를 이루었다"는 발표를 보자. '상당한 합의'라는 동전의 이면은 '적지 않은 이견'이다. "양국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했다"는 발표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 회담에서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회담이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고 말하기가 뭣하니 이렇게 격식을 차려 내놓는다.
그런 점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특이하다. 2013년 3월 중국 외교부장이 된 이후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늘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다. 표정만이 아니다. 화법도 직설적이다. 아주 비외교적인 인물이다.
지난달 초 중국-캐나다 외무장관 회담 기자회견장에서 기자가 캐나다 외무장관에게 "인권과 남중국해 문제가 논란인 중국과 왜 관계를 강화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왕이가 질문을 가로챈 뒤 기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의 질문은 중국에 대한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찼다. 근거 없는 비난은 거부한다." 캐나다 정부가 언론 자유의 침해라며 왕이에게 항의하는 등 시끄러웠다.
왕이 부장이 그저께 라오스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의 모두 발언 중에도 무례를 범했다. 윤 장관의 발언 중간중간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괴기도 했다.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왕이는 1969년 고교 졸업 후 8년간 흑룡강성에서 하방(下放) 활동을 했다. 외교부에 들어온 뒤 해외주재 경력은 일본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1989~1994년 주일 중국대사관 참사를 거쳐 2004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3년간 주일대사를 지냈다. 일본 경험이 전부인 왕이를 중국은 만 3년 넘게 외교의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다.
약소국 노나라 정공(定公)이 강대국 제나라 경공(景公)과 국경지대 협곡에서 회담을 가졌다. 제나라 측에서 흥을 돋운다며 창칼을 든 군사들이 위협적인 춤을 추었고, 광대와 난장이들이 정공을 비하하는 재주를 부렸다. 정공을 수행한 공자는 신성한 군주의 회동을 어지럽히는 외교적 무례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경공은 사과는 물론 노나라로부터 빼앗았던 땅까지 돌려주었다.
예를 목숨보다 중시하는 공자의 후예라는 중국이 무례로 치닫고 있다. 중화주의가 스스로 무덤을 판다. 왕이의 중국은 결코 G1이 될 수 없다. 아니, G2도 과분하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