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된 나체는 고문이자 모욕이다. 2004년 이라크 바그다드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만행을 저질렀다. 이라크 남성 포로들을 발가벗겨 목에 줄을 매 개처럼 끌고 다녔다. 나치가 강제수용소의 유대인들에게 알몸을 강요한 것도 인격적으로 욕보이기 위함이다.
종교적 주술적으로 나체는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 2002년 네팔에서는 가뭄이 이어지자 여성 농사꾼 200명이 나체로 밭일을 하며 비를 기원했다. 2004년 인도 북부 여성들은 밤에 옷을 벗고 밭을 갈며 기우제를 지냈다. 나체 기우제는 하늘의 신만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남편을 집안에 가두고 문과 창문을 닫고 하거나, 밤에 몰래 한다. 엿보면 '눈이 먼 톰(Peeping Tom)'이 되고 만다.
안데르센 동화에는 발가벗은 임금님이 등장한다. 여기서 나체는 조롱의 의미다. 거짓말쟁이 재봉사에게 애초부터 옷이란 없다. 임금에게든 신하에게든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재봉사는 발가벗은 임금이 거리행진에 나서도록 함으로써 기성세대를 맘껏 조롱한다.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5대 도시의 도심에 벌거벗은 트럼프의 조각상이 등장했다. 미국의 무정부집단 인디클라인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독선을 풍자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 구경하고 사진 찍느라 출근길 주변 도로가 체증을 빚기도 했다. 인디클라인 측은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점토와 실리콘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나체상은 볼썽사납다. 아랫배는 보기 흉할만큼 불룩 튀어나온 데다 축 늘어졌다. 남성의 신체적 상징도 없다. 하체가 빈약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다.
공교롭게도 조각상이 등장한 날 트럼프가 그동안의 '막말'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 "그 발언들을 후회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상처를 줬을 수도 있는 발언들에 대해 정말 후회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조각상에 충격을 받아 막말 사과를 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하지도 않다. 그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조롱하는 조각상을 대도시 한복판에 버젓이 세우고, 시민들은 이를 즐기는 풍경이 조금은 부럽다. 경찰이 조각상을 철거한 사유도 불법 구조물 설치나 교통흐름 방해 등이다. 우리가 저런 조각상을 세우면 어떤 죄목이 붙을까. 찬반 격론으로 또 얼마나 시끄러울까.
김찬석 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