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래'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의 '부산 미래 연구'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부터다. 간단치 않다. 눈앞의 오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논한다? 2030, 2050 같은 숫자가 얼마나 어렵고 무거운 개념인지 새삼 알았다. 그게 도시의 미래 경쟁력이고 변화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몇 차례 회의를 통해 도출한 부산의 미래 핵심 이슈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외부 이슈는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문제 ▷스마트 시대 ▷인공지능 ▷에너지 및 자원고갈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고용불안, 내부 이슈는 ▷일자리 미스매칭 ▷빈집(아파트) 문제 ▷공간 분포 ▷식수원 확보 ▷도시 안전 등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미래준비위원회에서 분석 보고한 내용과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토론을 진행하면서 부산 미래 연구에 맹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래 이슈들이 대부분 서울 중심주의의 자장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울을 제외한 그 어떤 지역의 삶도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다.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방분권 운동이 벌어진 지 20년이 지났으나 서울 일극 집중체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서울은 균형발전 차원에서 간신히 묶어놨던 수도권 규제를 못 풀어 난리다. 거의 모든 것을 중앙이 독점, 결정하고 흡수하는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노골적으로 '지방은 식민지다'라고 주장한다.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그렇게 "분권!"을 외쳐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방의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문제, 고용불안 같은 이슈는 해결 난망이다. 이쯤되면 미래 연구가 허망해진다.
여기서 한 가지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도시국가론'이다. 본지는 2008년 '부산을 도시국가로!'라는 어젠다를 걸고 집중 기획보도를 펼친 바 있다. 간단치 않은 어젠다였다. 골자는 대한민국 제2도시 부산이 세계도시들과 경쟁하려면 오늘날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국가 부산은 고도의 자치권과 경제적 자율권을 갖고 성숙한 시민공동체가 작동되는 체제다. 여기선 사람, 상품, 자본의 이동이 원활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비자·무관세·무규제·무언어장벽 즉, '4무(無)'가 실현돼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국방, 외교만 빼놓고 거의 모든 권력과 권한을 부산이 갖게 되는 형태다.
과하고 무리한 주장이라고? 그렇지 않다. 2008년 논의 당시 허남식 부산시장이 지지 의사를 밝혔고, 당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강소국 연방제 개헌'이란 파격적인 카드까지 제시했다. 아마 그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지금쯤 부산은 도시국가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후 부발연은 도시국가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국제자유도시' 도입 방안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나, 시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2006년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는 도시국가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10년간 중앙정부 권한을 대폭 이양(4537건) 받았고, 자치경찰제 시행, 무비자 입국, 내국인 면세점 설치, 투자진흥지구 지정 등 각종 특례 부여로 지역경제를 살리면서 국가경제에 기여했다. 특별자치도의 지위가 몇 단계 상승하면 그 자체가 도시국가다.
도시국가론은 결코 허무맹랑한 논의가 아니다. 부산만 잘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부산이 가진 장점을 경쟁력으로 바꾸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자는 논의다. 부산만으로 안 되면 동남권을 아울러 지역경제공동체→국제자유도시→도시국가 형태로 발전시키면 된다.
미래 연구의 최대 이슈는 대한민국의 불균형,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문제다. 중앙집중의 국가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지방의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지방이 의기투합해 도시국가 또는 강소국 연방제 같은 대안을 제기하고, 하다 못해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실질적 분권이 이뤄지는 장치를 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뛰어난 미래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선명한 개념으로 압축 정리한다. 지난 6월 타계한 엘빈 토플러는 농경사회, 산업혁명에 이은 기술 문명을 '제3의 물결'로 정의했고, 미국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탈산업사회론, 즉 정보사회의 도래를 예견했다. 2000년대 들어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드림 소사이어티'를 주창했다. 세계사적 조류는 과학기술시대를 넘어 감성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부산의 미래 연구는 이러한 흐름을 타되 '지방의 부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래마저 뺏길 수는 없다. 지방의 미래는 분권·자치·휴먼·감성이 꽃피는 세상이다. 부산에서 2030, 2050 미래로 가는 희망 열차를 출발시키자. '제4의 물결'을 만든다는 각오로.
대기자 ch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