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웃어야 하는데 슬프다. 웃으려해도 허사다. 그의 개인사가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부모는 배우였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이혼하고 일찍 세상을 떴다. 어머니는 성대를 다쳐 배우를 그만둔 뒤 조현병을 앓았다. 어린 채플린의 하루하루가 상상이 간다. 채플린 자신도 네 번의 결혼으로 11명의 자녀를 뒀다.
엎어지고 넘어지는 채플린의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는 개인사의 얼버무림이다. 말로 표현하면 슬픔이 들키기 십상이니 몸짓으로 대신한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도 그렇다. 사람들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을 과장된 익살로 포장한다. 웃고 있으나 웃는 것이 아니다.
"웃음을 걷어내면 슬픔이 나와야 하는 게 코미디." 코미디언 구봉서의 말이다. 구봉서는 채플린의 연기를 신봉했다고 한다. 또 있다. 구봉서는 코미디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풍자여야 한다고 믿었다.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는 기계문명에 쫓기는 노동자를 그렸고, '위대한 독재자'는 히틀러를 비꼬았다.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이 활약하던 시절 우리 코미디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주류를 이뤘다. 말이 아니라 몸짓과 표정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채플린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채플린 같은 바보도 필요했다. 그 바보 계보가 비실이 배삼룡을 시작으로 코미디황제 이주일- 영구 심형래-맹구 이창훈으로 이어졌다.
바보 계보가 끊긴 것은 코미디 대신 개그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어눌한 자니윤이 미국식 스탠딩개그를 선보이면서 개그맨 전성시대가 열렸다. 전유성을 필두로 이경규 김국진 유재석 신동엽 이휘재 김제동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지금도 각종 TV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구봉서 배삼룡의 코미디 시절에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코미디에서 개그로의 변천은 우리 생활상의 변화이기도 하다.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바뀌고,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개그콘서트로 바뀌는 동안 과연 우리는 행복해졌는가. 웃음이 많아졌는가.
채플린은 웃음이 없는 하루는 버린 하루라고 했다. 향년 90세로 타계한 한국 코미디의 대부 구봉서의 유명한 대사를 떠올리며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머금어본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