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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한정후견 신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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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는 정례 어머니는 파산을 하고 만다. 이래저래 끌어다 쓴 빚이 눈덩이가 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질적 파산이다. 정례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준 이 중에 김옥임이 있다. 정례 어머니와 초등학교부터 일본 유학까지 동창생이다. 개인적 치부를 위해 동창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도 마다않는다. 정신적 파산이다. 염상섭의 1949년 작 '두 파산'의 내용이다.

예전 민법에서는 금치산, 한정치산, 파산이 세트로 취급됐다.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파산자로 선고 받으면 죽음이다. 아무것도 못 한다. 국가시험 응시 자격조차 없다.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이 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 선고를 받았다. 신 회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굴욕이다. 신격호가 누구인가. 1921년 울주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던 1940년 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 와세다대 화공과를 졸업했다. 그 뒤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돈을 벌 욕심에 부관연락선의 밀항선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건너가 껌을 시작으로 오늘의 롯데를 일궜다.

신 회장은 우리나이로 올해 아흔여섯이다. 아직 경영 일선에 남아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신 회장과 비슷한 연배의 그룹 회장들은 벌써 타계했고, 3· 4세에게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다.

신 회장이 이번에 법원으로부터 받은 한정후견은 예전의 한정치산(限定治産)과 흡사하다. 정신적 육체적 장애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는 처지가 돼 후견인을 둔다는 뜻이다. 당초 신 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79) 씨가 청구한 것은 성년후견 지정이다. 예전의 금치산이다. 한정치산은 제한적으로나마 본인이 의사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금치산은 전혀 그럴 수 없다. 법원이 신 회장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준 것이다.

재벌총수가 한정후견, 성년후견의 청구 대상이 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 전에 경영 일선에서 깨끗이 물러났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다. 아들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 결국은 신 회장 본인에게 불똥이 튄 것이다. 신 회장은 한정적이나마 자기결정권을 부여받았으되 정신적으로는 이미 파산이다. 두 아들 신동주, 신동빈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버지를 한정후견의 지경으로 이끌었으니 정신적 파산은 물론이요 롯데그룹을 흔들어대는 물질적 파산도 겸했다. 2016년판 '두 파산'이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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