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마콘도 마을을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인 아마란타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자신이 언제 죽을 지를 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수의를 짠다. 마침내 그날이 되자 그녀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뒤 색다른 주문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 등 이미 죽은 사람들 앞으로 편지를 써서 가져오면 자신이 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수는 있다. 아마란타처럼 먼저 저쪽 동네에 가 있는 이들에게 줄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것도 얼핏 생각하기에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저쪽 동네에서 편지의 수취인들을 만날 수 있느냐는 별개로 치고. 하지만 저쪽 동네에서 이쪽 동네로 소식을 전할 방법은 없다. 그냥 아마란타가 가져간 편지가 잘 전달됐을 것이라고 믿는게 편하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자신이 저쪽 동네에 가게 되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나 따지겠다고 흥분했다. 돈은 엉뚱한 데다 줘놓고 자신한테 뒤집어 씌운다는 이유다. 그러면서 징역 1년6월과 추징금 1억 원의 1심 판결을 노상강도에 비유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법원은 이번 공판에서 산 자보다 죽은 자를 신뢰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생전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법원칙보다 경험적 상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죽는 자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새가 죽을 땐 그 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이 죽을 땐 그 말이 착하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는 대개 죄를 혼자 가져간다. 롯데그룹 이인원 부회장은 유서에서 롯데그룹에는 비자금은 없다고 했다. 신동빈 회장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부회장이 모든 것을 떠안고 영원히 입을 닫으면서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도 난관에 부딪쳤다.
고 성완종 회장은 뭔가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홍 지사를 포함한 정치인 7명의 실명과 이 가운데 5명에 대해서는 돈 액수까지 적힌 메모를 남겼다. 또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는 돈을 건넨 일시와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가운데 친박계 인물은 쏙 빠지고, 이완구 전 총리와 홍 지사 자신만 걸렸으니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홍 지사가 호언한 대로 언젠가 성 회장을 만나게 되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 궁금하다. 홍 지사의 다혈질도 많이 사그러들지 않을까 싶다. 문득 그때쯤이면 사자까지 거론하며 핏대를 올리던 홍 지사가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