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꿀벌은 슬픔을 모른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이라고 한다. 부지런함의 상징인 꿀벌은 정치권에서도 곧잘 인용된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 6월 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일하는 꿀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며 소속 의원 38명이 꿀벌처럼 일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박 의원은 꿀벌 애찬론자다. 8월초에도 우병우 청와대 정무수석 문제에 대한 야3당의 공조 방침에 새누리당이 반발하자 '꿀벌처럼 일하려는 야당을 말벌로 만들지 말라'고 일침을 놓았다. 가장 게으른 집단인 정치권에서 가장 부지런한 집단인 꿀벌을 끌어다 쓴다. 꿀벌에 대한 헌사치고는 고약하다.
벌은 총체적 미덕이다. 부지런함뿐만 아니다. 침이 있지만 꽃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과수와 열매를 맺게 하고 인간에게는 달디단 꿀까지 선사한다. 인류의 소중한 식량원이다. 벌을 왜 소 돼지에 이어 제3의 가축이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근년 들어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2005년에서 2006년에 걸쳐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벌떼폐사장애(Colony Collapse Disorder·CCD) 현상이 발생했다. 당시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CCD 관련 뉴스에서 이 경구가 빠지지 않았다.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4년 이내에 사라진다'. 꿀벌이 없으면, 꽃가루받이도 없다. 결국 식물도 없고, 동물도 없고, 인간도 없게 된다. 꿀벌의 실종이 가져오는 나비효과다.
꿀벌의 실종에는 여러 설이 있다. 농약, 전자파, 스트레스, 유전자조작농작물(GMO)설 등이다.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에릭 메센 교수팀의 연구도 흥미롭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벌들의 영양실조 가설이다. 캘리포니아지역에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 봄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아 결국 벌들이 굶어죽었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서 꿀벌이 처음으로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4일 보도했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S)이 하와이 토종 꿀벌 7종을 멸종 위기종에 포함시켰다. 미국은 앞서 지난해 5월 백악관에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 보호를 위한 범국가 대책팀'까지 꾸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지구상의 동물 중 최후까지 살아남을 종이 곤충이라고 한다. 그런데 꿀벌이 벌써 멸종 위기다. 꿀벌 없는 지구, 꽃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없다. 꿀벌의 실종은 지구를 학대한 인류가 자초한 벌이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