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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소재건 신부의 꿈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 "아이들 차별받고 자라선 안돼"

다큐 '오! 마이 파파' 다음 달 개봉 목표로 스토리펀딩 벌여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0-06 19:35:1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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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태석 신부의 생가가 있는 부산 서구 남부민2동이 낡은 마을 이미지를 벗고 '이태석 마을'로 거듭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0년 우리에게 사랑과 감동을 남기고 떠난 '톤즈의 성자', 이태석 신부의 정신적 스승은 미국인 알로이시오 슈월츠(한국명 소재건·1930∼1992) 신부다. 소년 이태석이 숭고한 꿈을 키운 것도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끌어안는 소재건 신부의 삶을 지켜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태석은 어린 시절 소 신부가 주임 신부로 있던 부산 송도성당에 다녔고, 그의 어머니는 소 신부가 추진한 '자수 구호사업'에 참여해 손수건에 수를 놓는 일로 생활비를 보탰다. 이태석 신부는 자신이 소 신부에게서 받은 영향을 '아름다운 향기'라고 불렀다. 그렇다.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표현하는 말로 '향기'만큼 적절한 말이 있을까. 향기는 고요한 가운데 주변을 아름답게 하고, 부지불식간에 배어들게 한다.

1930년 미국 워싱턴DC에서 태어난 소재건 신부. 1957년 미국 메리놀 신학교에 이어 벨기에 루벵 신학교를 졸업할 즈음 사람들에게 묻는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살기 힘들고 가난한 나라가 어디인가요?" 한국이란 대답을 들은 그는 주저 없이 '부산행'을 결정한다. 미국에서 부산교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부산에 정착한 때가 1957년 겨울이었다. 27세의 소 신부는 도시 곳곳에서 전쟁의 상흔을 발견한다.

자갈치와 충무동의 걸인들, 아미동과 송도 일대의 빈민들, 그리고 당시 결핵환자들이 많이 모여 살던 대청동 산동네를 둘러보고 깨닫는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다. 선교는 그 다음이다. 그가 한국 이름을 소재건(蘇再建)으로 지은 이유다. 한국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꿈을 담은 것이다. 1961년 그는 미국 독지가들에게 한국의 처참한 상황을 알리고 워싱턴에 '한국자선회'를 세운다.

■재건의 꿈

한국자선회는 그의 복지사업에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1982년 당시 자료를 보면 한국자선회가 해마다 지원한 금액은 40억 원에 이른 것 같다. 이때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이었으니 그 액수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럼, 소 신부의 생활은 어땠을까. 사진작가 최민식은 1962년 처음 그를 만났던 날을 회상한다.

한국자선회가 사진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자, 수녀가 저기를 가보라며 가리켰다. "수녀님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이 보였습니다. 이럴 수가, 신부가 이런 곳에서 살다니. 방에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좁아 보였습니다. 방안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 타자기 한 대만 덜렁 있을 뿐이었습니다."

최민식 사진작가는 그 뒤로 소 신부와 함께한 시간이 "사진의 방향을 굳건히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신부는 부지런하고 청빈했다. 아침 점심 식사는 손수 만들었고, 한국에 올 때 받은 사제복 한 벌을 평생 동안 기워 입었다. 1964년 그는 '마리아 보모회'(이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한다. '수녀님'보다 '엄마'로 불리던 이들과 함께 '송도 가정원(고아원)'을 세우고, 전쟁미망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곧이어 아미동 암남동 보수동에 무료진료소를 열고, '소년의집'(1970년)을 세운다. "내 희망은 보통 가정의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자식들이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고, 교육 잘 받고, 잘 취직하고, 잘사는 것을 바랍니다." 그야말로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본 것이다.

어느 날 소년의집 아이들이 일반학교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자 신부는 소년의집에 자체적으로 초·중·고교 과정을 마련한다. 또 교육에서 예술의 중요성을 알았던 그는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쳐 관현악단을 만든다. 한국의 '엘 시스테마'가 태어난 순간이다. 영혼이 맑으니 생각도 밝은 것일까. 헐벗은 아이들과 삶을 함께하고, 다음 시대를 앞서 내다본 것이다.

최근 소 신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제목은 '오! 마이 파파'. 다큐를 미리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감동적이었다. 이 감동은 사랑과 진실이 절실한 시대에 느끼는 인류의 좌절감과 조응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소 신부가 한국에 온 1957년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윤택한 삶을 산다. 소 신부가 바란 것처럼 '재건'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반면 정신적 차원에서 재건이 성공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망설여진다. 과연 1957년처럼 못 살던 시기에도 지금처럼 부모가 아이를 해치는 일이 많았을까. 다큐를 보며, 성당에 다니지 않는 필자조차 감동한 대목은 이것이다. 소년의집 아이들이 차별을 받는다는 말을 듣자 신부는 말한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예수님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차별받고 자라서는 안 됩니다."

■'오! 마이 파파'

동학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말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1890년대 조선이 진구렁에 빠져 허덕일 때 해월은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하느님)을 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마음가짐이 아닐지. 뭐니 해도 삶은 결국 각자의 태도와 의지가 결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과학의 관점에선 소 신부가 '구조적' 모순을 바꾸기보다 '개인적' 구호에 힘썼다고 깎아내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구조적 인식에도 한계가 있다. 개인의 각성과 노력을 폄하하는 한편, 개인의 잘못된 태도와 무책임함에 무조건적 면죄부를 준다는 단점이 있다. 개인적 각성과 구조적 인식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국화는 차가운 계절에 향기를 더한다'(菊花寒更香)고 했다. 어려운 시절에 부산을 찾은 소 신부의 정신은 소년 이태석에게 스며들었고, 다시 세계로 퍼졌다. 두 분은 인류의 스승이자 부산의 자랑이다.

영화 '오! 마이 파파'가 다음 달 개봉을 목표로 스토리펀딩(인터넷 모금)을 벌인다. 개봉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은 이달 21일까지다. 차가운 계절, 영혼의 향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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