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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11월의 행복 /김찬석

서울지하철 사고 회사원 마지막 말에 가슴 먹먹

지각전화조차 힘든 사회, 살아가기가 이리 어렵다…희망 메시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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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라는 블랙홀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습니다.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놓은 개헌카드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다른 사안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가슴 한구석에 사건 하나가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36세 남자가 스크린도어에 끼어 숨졌습니다. 그가 지하철 역무원에게 남겼다는 마지막 말이 가슴에 시립니다. 회사에 늦는다고 연락해야 하니 휴대전화를 찾아 달라고 했답니다.

왜 그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많이 아파요" 라고 말했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일제 가미가제 청년들도 최후의 순간에는 천황이 아니라 어머니를 외쳤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들도 죽음의 순간에는 김일성이 아니라 오마니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서울대 공대와 대학원을 나온 36세의 미혼남성은 홀어머니도 남동생도 아닌 회사부터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위중함을 몰랐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뭔가 개운치 않습니다. 아마 그에게 회사라는 존재는 자신이 지금 죽어간다는 사실조차도 잊게 만드는 또 다른 블랙홀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유능한 사원이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거기서 나왔겠지요. 애사심이 남달랐다는 회사 동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런 추측이 억측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문득 두 사람이 떠오릅니다. 변신의 그리고리 잠자와 세일즈맨 윌리 로먼입니다.

잠자는 문제의 그날 아침 눈을 뜹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언뜻 시계를 쳐다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6시30분입니다. 잠자는 외판원입니다. 5시 기차를 탔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김포공항역의 그 젊은이가 차라리 잠자처럼 늦잠을 잤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뒤 열차를 탔다면 말입니다. 아슬아슬하게 환승을 하는 시간도 지나버려 아예 포기했더라면 슬라이딩도어와 출입문 사이에 끼는 초조함도 고개를 숙였을테니 말입니다.

잠자가 기괴한 벌레로 변한 것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퇴행입니다.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입니다. 퇴행이라면 손가락을 빠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법한데 카프카는 굳이 흉측하고 거대한 벌레를 등장시킵니다. 벌레 잠자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꽂힌 상처가 악화돼 죽습니다. 외판원의 고달픈 삶에서 해방되는 방식치고는 참으로 허무합니다.

윌리 로먼은 만년 말단(lowman) 사원입니다. 6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오래된 차를 몰고 장거리 출장의 세일즈 일을 해야 합니다. 현재 사장의 아버지가 사장이던 시절에는 그래도 잘 나갔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세일즈일을 못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20~30년 전 주급 170달러를 받았다던 그가 젊은 사장에게 주급 40달러에 회사에 붙어있게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허사입니다.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남은 일은 자동차사고의 보상금입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잠자와 로먼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취업난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열정페이가 당연시됩니다. 편의점 1인 아르바이트 청년은 화장실을 갈 수도 없습니다. 기간제 교사들은 학생들로부터도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 정규직에서 비정규직까지 죄다 공무원시험으로 몰려갑니다.

샐러리맨의 비애는 전 세계 공통이겠지만 한국과 일본이 유난합니다. 과로사로 악명 높은 일본 덴쓰사가 선심 쓰듯 대책이라는 걸 내놨습니다. 밤 10시에 사옥을 소등해 강제퇴근시키겠답니다. 밤 10시에 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전에는 몇 시에 퇴근했다는 말입니까. 일본 1등 광고회사라는 명성이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덴쓰의 기업문화를 보면 밤 10시에 소등해도 개인 조명을 이용해 업무를 보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업무를 집으로 들고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겠지요. 과로를 강요하는 회사의 근본 체질이 바뀌지 않는 한 밤 10시 소등은 부질없습니다.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 컵라면 청춘이 스크린도어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것이 지난 5월입니다. 그런데 다시 스크린도어 사고가 났습니다. 출근이 조금 늦겠다고 상사에게 전화하는 것조차 용납 되지 않는 분위기가 바뀌어야 합니다. 서울 집값이 너무 올라 수도권에서도 변두리로 변두리로 밀려나고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게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에 또다시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가끔은 희망적인 글들이 신문에 실렸으면 좋겠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언제가의 광고처럼 "부자되세요"가 아니라 "행복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1월에는 좋은 소식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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