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강명관 칼럼] 연산군 최후의 날

말 한마디에 생사 좌우, 애민 대신 제 몸 쾌락만 추구한 군주

반정에 폐위 두 달 후 오두막집서 초라하게 홀로 죽음 맞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2-08 19:26:51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중종 1년(1506) 9월 2일 승지 윤장(尹璋)·조계형(曺繼衡)·이우(李堣)가 허둥지둥 달려 들어가 연산에게 반정을 알렸다. 놀란 연산은 윤장의 손을 잡았다.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턱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윤장 등은 동정을 살펴본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갔다.
   
연산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해치려는 자에게 쏠 작정이었다. 모두가 왕으로 인정할 때 명을 받드는 법이다. 반정이 일어난 순간 그는 왕이 아니다. 지엄한 왕명이건만 쥐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연산은 평소 찾지 않던 왕비 신 씨(愼氏)의 처소로 뛰어들었다.

"우리 같이 나가서 잘못했다고 빌어봅시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 그저 순순히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전에 입이 닳도록 말려도 듣지 않으시더니 끝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상께서야 화를 스스로 불렀으니 죽음도 당연하다 하겠지만, 저 죄 없는 어린 것들은 어찌 될까요?"

신 씨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통곡을 했다. 연산도 그제야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말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뉘우쳐도 소용이 없구나."

연산은 자신이 한 일을 돌아보았다. 개인적으로 귀여워하고 아끼는 사내·계집들과 술을 마시고 아첨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가 가장 열심히 한 일이었다. 다음으로 몰두했던 일은 거슬리는 사람들을 내쫓고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지막으로 수천의 기생을 불러 노래하고 춤추게 하고, 때로 그들과 난잡한 성행위를 벌이는 것이 그가 일상적으로 한 일이었다.

홀로 남은 연산은 산더미 같은 파도 앞에 서 있는 초라한 사내에 불과했다. 어제까지 한마디 말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던 전제군주 연산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두망찰 넋이 빠져 서 있는데 박원종(朴元宗) 등 반정군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내시 둘을 시켜 옥새를 빼앗은 뒤 연산을 일단 동궁으로 옮겼다. 우의정 김수동(金壽童)이 울면서 "노신(老臣)이 죽지 않고 있다가 오늘 이 일을 보았습니다. 전하께서 인심을 너무나 잃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모쪼록 옥체를 보중하시어 떠나시옵소서." 이렇게 하여 연산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연산에게 핍박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났던 김전(金詮)은 눈물을 흘렸고, 장순손(張順孫)은 춤을 추었다.

원래 잔혹한 형벌을 베풀기 좋아하던 연산이었다. 손바닥을 뚫고, 불에 달군 인두로 살갗을 지지고, 가슴을 빠개고, 몸을 마디마디 자르고, 배를 가르고,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는 것 등이 그가 즐겨 베푼 형벌이었다. 악형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내지르는 비명을 그는 음악처럼 들었던 터였다. 동궁에 갇혀 있으면서 연산은 자신이 남에게 베풀었던 그 형벌이 자신에게 가해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몸을 떨었다.

날이 밝자 유순정(柳順汀) 등이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晉城大君)을 모셔왔다. 몇 차례 형식적인 사양을 한 뒤 진성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곧 중종이다. 대비는 전왕(前王)을 폐하여 연산군으로 강등시키라 명했다. 연산의 비 신 씨는 폐비가 되었다. 신 씨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걸어서 궁을 나섰다. 비단신이 자꾸 벗겨지자 하는 수 없이 비단 수건을 찢어 동여매고 걸었다. 신 씨는 아들 둘, 곧 세자와 대군과 함께 청파의 무당집에 들러 다리품을 쉬었다. 무당이 밥을 지어 올렸다. 밥상은 예전과 달랐다. 대군이 "왜 새끼 꿩이 없느냐?" 하자, 따라갔던 유모가 "내일은 이런 밥만 얻어먹어도 다행일 것입니다"고 하였다. 어린 아들은 세상이 바뀐 줄을 몰랐던 것이다.

연산 옆에서 알랑거렸던 자들은 죽음을 맞았다. 연산에게 빌붙어 권세를 부렸던 전동(田同)·김효손(金孝孫)·강응(姜凝)·심금손(沈今孫) 등은 참형에 처해졌다. 연산이 총애했던 전비(田非)·녹수·백견(白犬) 등 세 여자 역시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목이 떨어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온 나라의 고혈이 이곳에서 탕진되었다' 하면서 세 여자의 음부에 기왓장과 돌을 마구 던졌는데 금세 돌무더기가 되었다. 이로써 학정은 끝났고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대신들은 의논 끝에 연산에게 나인 4명, 내시 2명, 반감(飯監) 1명만 강화도 위쪽에 있는 교동도(喬桐島) 귀양지로 따라가게 하였다. 연산은 땅에 엎드려 "큰 죄를 지었지만, 특별히 임금의 은혜를 입어 죽지 않았습니다"라고 동생 중종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뒤 뚜껑 없는 평교자를 타고 궁궐의 문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갓을 푹 숙여 썼다. 교동도로 가려면 배를 타야 했는데, 바람이 크게 불어 배가 뒤집힐 뻔했다. 연산은 물에 빠져 죽을까 두려워 바들바들 떨었다. 이틀 걸려 겨우 교동에 도착하니 장수와 군사들이 그를 에워쌌다. 연산은 너무나 무서워 땅바닥에 엎드려 땀을 쏟으며 얼굴을 들어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는 땅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미물과 다를 바 없었다.

교동도 귀양지는 감옥과 같았다. 집 둘레에는 높고 좁은 울타리가 쳐져 해를 볼 수가 없었고, 단지 작은 문 하나만 있어 그곳으로 음식을 넣어 주었다. 연산이 그곳으로 들어가자 시녀들이 통곡을 하였다.

   
유교 국가의 왕이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애민(愛民)이다. 그럼에도 연산은 백성의 삶을 저버리고 제 한 몸의 쾌락을 추구했다. 결국 11월 6일 쫓겨난 지 2달 만에 연산은 한 줄기 햇볕도 들지 않는 어둡고 싸늘한 오막살이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최후의 날은 이렇게 초라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어떤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우리는 조만간 연산군 최후의 날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3. 3‘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4. 4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5. 5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6. 6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7. 7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8. 8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9. 9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10. 10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1. 1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2. 2‘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3. 3'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4. 4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5. 5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6. 6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7. 7李 대통령, AI에 물었다…“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불가는 억지”
  8. 8與, 초광역특구법안 발의 “주 52시간 특례 숙의”
  9. 9"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10. 10용혜인 “부산 119구급 스마트시스템 이용률 1%, 전국 최하권”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4. 4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5. 5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6. 6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7. 7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8. 8“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9. 9동남아 접수하러 ‘부산표 게임’ 방콕행
  10. 10예탁원 나눔재단, 17년째 지역상생 실천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4. 4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5. 5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6. 6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7. 7APEC공원·금련산역 러너지원공간 문 열어
  8. 8“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9. 9[속보]20일 부산서 70대 남성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사망
  10. 10피습 자작극 정이한, 모친 증인 신청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3. 3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4. 4"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5. 5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6. 6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9. 9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10. 10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주당 ‘13.7시간’ 고용
발가벗겨진 사우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미래대응기금, 지방재정 기반 흔들어선 안 된다
단일종목 ETF 졸속 심사 인정…책임 소재 밝혀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문화예술의 시대
다민족 사회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