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 부산시장은 울산 울주군 범서읍 출신이지만 부산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영도초등-부산중-경남고 등 출신학교에서 보듯 대학(서강대)을 서울로 가기 전까지 유년과 청소년기를 원도심에서 보냈다.
그래서 해운대에서 정치를 했지만 사실상 고향인 원도심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3년 전 펴낸 저서 ‘일하는 사람이 미래는 만든다’에서 영도를 이렇게 기억했다.
“영도구 봉래동 3가 45번지. 영도만 생각하면 항상 가보고 싶고 그곳에서 만나고 인연 맺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며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고 또 보고 싶다.(중략) 친구들과 뛰놀던 영도의 골목길 하나하나가 눈에 선하다. 나는 ‘국회의원 서병수’ 이전에 영도 골목 쏘다니던 ‘영도 아이 서병수’ 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시절 나와 함께 하던 많은 아이들, 어르신들, 동네 분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른곤 한다.”
서구 동대신동의 경남고 시절 추억도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좋은 선생님 밑에서 좋은 친구들과 우정을 쌓은 것이 내 인생에서 두고두고 큰 자산으로 남아있다. 그 우정이 부산의 힘이고 그 힘으로 내가 오늘날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원도심에서 보냈던 아름다운 추억이 후일 정치인 서병수에게 귀중한 자양분이 됐던 것 같다. 따라서 서 시장이 꺼내 든 중 동 서 영도구 원도심 자치구 통합 카드에는 일견 진정성이 묻어 있다. 아니, 다른 지역 출신보다 원도심 출신인 서 시장이 원도심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더 각별해 보인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원도심 통합 안은 몇 달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너무 급하게 일을 추진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서 시장이 원도심 통합을 공론화한 것은 지난 3월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불과 1년3개월 앞두고 4개 기초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통합안을 제시했다. 통합단체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출하자는 것이다. 4개 구가 통합하면 인구 37만3500명으로 단번에 해운대·부산진구에 이어 3위가 된다. 면적은 부산에서 6번째가 된다. 지역 내 총생산은 11조710억 원으로 강서구를 제치고 1위로 뛰어오른다.
이런 화려한 청사진에도 중구는 구청장부터 반대한다. 영도구와 동구에서는 의회의 반대가 극심하다. 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과거에도 해당 지역주민과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권 및 공무원의 반대로 자치구 통합이 무산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개 구도 아니고 4개 구를 통합하는 데 1년 만에 결정 내자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물리적으로도 통합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부산시는 내년 2월까지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지역의 반발을 감안하면 여의치 않다.
시의 희망대로 주민투표법에 따라 중앙 정부에서 해당 자치구에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한다고 해도 해당 자치구의회 의견 수렴 과정 등이 남아 있어 시비의 소지가 크다. 민주당 정부가 중구의 반대로 내부 합의도 이루지 못해 갈등 증폭이 불가피한, 그것도 한국당 서 시장이 주도하는 주민투표를 허용할지는 더더욱 미지수다. 게다가 현 정부 입장에서는 내년 개헌 투표 등의 정치 일정도 감안해야 하는 판에 굳이 당사자들이 싫다는데 밀어붙이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만약 주민투표를 한다고 해도 투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투표율 33% 이상이 나와야 되는데 이것도 간단치 않다. 지난 4·12 재·보선에서 부산 강서구의회 투표율은 22.5%에 그쳤다. 민주당이 투표 참여 보이콧을 선언할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서 시장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고개를 젓는 이가 적지 않다. 만약 투표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내년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때 부산의 중심이었다가 쇠락해가는 원도심을 재건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 해법의 하나로 해당 자치구 통합 안은 신선한 아이디어다.
서 시장이 정말 오랫동안 갖고 있던 생각이라면 3년 전 부산시장 선거에서 시민에게 뜻을 물어야 했다. 아니면 취임 초기부터 꺼내 놓고 이해당사자를 설득했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덜렁 내놓다 보니 정치적 해석만 더해졌다. 재선을 앞둔 서 시장에게 원도심 통합 카드는 절묘한 묘책이 될 수 있었다. 근데, 치밀한 준비 없이 마음만 급해 스텝이 꼬이는 형국이다.
편집국 부국장 gian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