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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상식의 힘, 상식의 복원 /박무성

‘박근혜 비극’ 부른 몰상식, 사회 공동체에 아직 만연

계절·날씨 따라 옷 고르듯 공동체 맞는 생각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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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 ‘광장의 촛불’이 없었다면, 지금은 원래 일정대로 19대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 카운트 다운에 돌입하고 있을 것이다. D-5일. 아마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 또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정치세력들이 서로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유연한 존재’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지나간 일을 두고 ‘만약’이라는 부질없는 가정을 하는 것은 당시 순간의 중요성과 절실한 의미를 다시금 선명하게 새겨보기 위해서일 터이다.

1년여 전 촛불집회가 열리던 토요일 저녁이면 부산 서면 일대에 나가보고는 했다. 현장 모습이 무엇보다 궁금했고, 사태 추이를 나름대로 예측하고 싶었다. 참가자라기보다 관찰자 내지 기록자의 역할에 따랐던 것 같다.

집회 현장에서 매번 놀란 것은 시민들의 자제력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숱한 집회·시위를 지켜봤지만, 그런 광경은 신기할 정도였다. 참가 규모나 갈수록 확대되는 확장성에 언제 어디서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끝까지 선을 넘지 않았고, 평화적 시위는 시종일관 유지됐다. 전 세계가 경이롭게 지켜본 그대로다.

촛불시위 자체를 혁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분석에 동의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이은 조기 대선,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혁명적인 사회경제적 이슈도 없이 총 23차례, 전국 참가자 누적 인원 1685만을 기록할 수 있었던 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최 교수는 보수세력의 과도한 헤게모니가 촛불시위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보수에 쏠린 압도적인 우위가 안일과 무책임을 불렀고, 야당과 진보세력의 허약한 역할을 시민들의 민주운동이 대신했다는 이야기다. 정당 중심 의회주의를 강조해온 원로 정치학자의 균형 잡힌 해석으로 들린다. 정치학적 전문성을 내려놓고 저널리즘의 시선으로 풀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촛불시위의 동력은 상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상식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질 일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원칙 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영어식 표현처럼 공통의 감각(common sense)으로,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 이해력 판단력 분별력’(두산백과사전)이다. 상식은 사회 구성원들의 소통을 유지하는 인프라, 무형의 사회기반시설 같은 것이다. 상식이 있기에 사사건건 충돌할 수 있는 이해관계가 안정적으로 조율되고, 제멋대로일 수 있는 개성도 공통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 제어할 수 있다. 요컨대 많은 사람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적으로 유지해주는 골격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상식은 비법이나 묘안에 의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그런 골격이 무너져버렸다. 누구에게나 불합리한 일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비상식)가 비일비재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일조차 아예 무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몰상식)가 드물지 않게 목격된다. 세상 살다 보면 그저 참고 넘어가야 할 일도 적지 않으련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상식의 임계점이다. 상식이 임계점을 넘으면 저항의 칼이 되기도 한다. 최소한의 상식조차 통용되지 않는 사회는 불안하고 위험하다.

촛불시위는 우리 사회가 맞은 그 임계상황이었다. 박근혜의 비극은 한마디로 상식의 배반에서 빚어진 것이다. 상식의 힘이 낡고 무능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냈다. 촛불시위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면, 결실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은 지금부터다. 바로 상식의 복원이다. 비상식과 몰상식은 각자의 내면에서부터 내 주변에, 우리가 처해 있는 조직에, 사회 공동체에 여전히 만연해 있다. 어떤 세상을 꿈꾸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소박하고 진지하게 말할 수 있겠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면 충분하겠다’고. 권력의 끄트머리가 호가호위(狐假虎威)하지 않고, 졸부들이 허장성세(虛張聲勢) 부리지 않고, 알량한 지식인이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는 그런 세상 말이다.

‘인간의 정신과 영혼은 삶의 도구라는 점에서 의복이나 마찬가지다. …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골라 입는 육신의 옷을 펼쳐보듯, 자신의 정신적인 의상을 점검할 줄 알아야 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옷을 결정하듯, 더불어 사는 인간과 자기가 속한 사회에 맞는 생각을 갖추어야 한다’(차병직의 책 ‘상식의 힘’). 위기의 우리 사회가 상식을 복원할 수 있게끔 각자의 실천지침으로 삼아도 좋겠다.

편집국 선임기자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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