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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성 칼럼] 그들의 시대는 간다

미투는 성차별 이전에 권력관계의 인권문제

평등의식으로 무장한 새 세대가 변혁 이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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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여 미투(MeToo) 운동의 파괴력은 참 컸다. 올 1월 29일 한 검사의 폭로 이후 하루가 멀다고 성폭력 피해 사례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단과 연극·영화계, 미술계, 대학가까지 충격적 사건들이 까발려졌다.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우던 진보적 예술가를 비롯해 성직자인 사제도 추악한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전방위적으로 격랑에 휩싸였다. 급기야 초·중·고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미투 폭로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전개될지는 모른다. 단지 남성중심의 위계 권력이 지배적인 관료조직과 의료계, 언론계 등으로 번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무겁고, 놀라운 것이었다. 하나 오히려 더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들의 면면과 그들의 의식세계다. 가해자들의 반응은 마치 짜놓은 공식 같다. 일단 시간을 끌거나 부인하다가, 추가 폭로로 벼랑 끝에 몰리면 ‘마지못해’ 사과하는 방식이다. 사과 내용도 일률적이다. 어지러운 표현들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그것(성폭행)이 잘못(범죄)인지도 몰랐던 나의 과거를 지금은 반성한다’. 죄의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일상화된 관습 탓에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겠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을 법하다. 그들에게 보편적인 인권의 감수성을 기대한 건 아니다. 적어도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타인의 고통을 제물로 성적 욕구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해자들의 행태를 개인적 일탈이나 특성으로 본다면 미투 운동이 안고 있는 다층적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어느 분야 가릴 것 없이 각계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며, 권력을 업고 약자에게 강요한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남성 대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라기보다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라는 권력관계가 더 본질적이다. 조직 내 성폭력이 10,20년 넘게 존속될 수 있는 것은 이를 고작 개인의 비행으로 치부하면서 권력구조와 정치로부터 유리된 사안으로 인식해 왔던 영향도 크다.

미투 운동을 ‘현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일각의 염려는 그야말로 ‘공작의 사고방식’이며, 지극히 도구적이다. 미투가 애초 자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운동이라는 어느 야당 대표의 발언 또한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권력형 성폭력은 남성이 여성에 강요하는 범죄이기 이전에 피해자 인권의 문제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권력은 곧 폭력이다. 이런 이유로 미투 운동은 페미니즘을 넘어 인권운동으로 귀결되는 것이 마땅하다. 최근 스웨덴 사회의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투 운동은 1919년 여성 참정권 운동 이후 가장 큰 여성 운동이며 사회적 혁명’이라는 시민사회의 선언 말이다.

사회운동은 시대의 변화, 세대의 교체로 완결되게 마련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한순간에 ‘리셋’되는 세상은 없다. 이번 미투 폭로에서 가해자로 거론됐던 인사들은 그들의 무대에서 퇴장할 것이다. 진정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감각을 이제 와서 체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변화를 위해 그들 스스로 익숙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가부장적 권력위계의 정점에서 추락한 그들의 빈자리는 문제의식과 인권 감수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들로 교체돼야 한다. 이들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다. 평등 문제에 유독 민감한 이들은 수직적 권력질서를 체질적으로 불편해 한다. 성적 불평등에 대한 반감 역시 크다. 집단주의와 조직 내 역할을 명료하게 구분할 줄 알고, 개인의 건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대들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미투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권력형 성폭력은 오래 갈 것이다. 뒤틀린 의식이 기득권 세대에 깊게 스며들어 그 뿌리가 깊고 질기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과 침묵의 카르텔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추악한 폐습이다. 그래서 강제적 견제 수단은 필수적이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막고, 권력형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조직적·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다. 뻔히 알면서도 묵인 내지 방조해왔던 비겁함과 무력감을 반성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공범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 변혁으로 나아가려면 더 크고 강한 사회적 에너지가 동원돼야 한다. 어쩌면 미투 운동이 다시 광장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 ‘미투를 통해 회복해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그들의 비열한 시대는 함께 끝내야 한다.

논설주간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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