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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성 칼럼] 지방의 위기가 안보 위기다

분권은 옵션이 아니라 지역민의 자주·생존권

국정 근본 틀 안 바꾸면 국가 안위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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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안위와 개인의 행복은 늘 조응하는 것일까. 국가의 안보는 개인의 안보에 우선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유엔개발계획(UNDP)은 정리했다. 소극적 평화개념인 국가안보를 넘어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것’을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른바 인간안보(human security)다. 여기에는 안전과 평화, 경제발전 및 복지, 사회정의와 평등, 인권과 법치, 환경권 등 다양한 개념이 포함된다. 요컨대 안보를 군사적 요소에서 삶의 질 문제로 확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1994년 ‘인간개발 보고서’에서 제시됐으니 제법 오래된 이야기다.

인간안보의 잣대를 들이대면 우리나라는 북핵의 위협 앞에 놓인 국가안보 못지 않게 개인의 안보가 위태롭다. 인간안보의 다양한 요소 가운데 경제발전, 사회정의와 평등 같은 요소를 꺼내 지역별로 비춰보면 지방의 위기가 도드라진다. 특히 지역을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분할 경우 위기의 양상은 극명하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 100대 기업 본사의 95%, 전국 20대 대학의 80%, 의료기관의 51%가 몰려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쭉정이로 전락한 지방의 위기가 국가안보의 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추세는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지방은 위기를 넘어 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지역별 인구 추이에 따르면 향후 30년 안에 전국 84개 군 지역 가운데 69곳(82%), 3482개 읍·면·동 가운데 1383곳(39%)이 사라질 전망이다. 인구학적 추계는 있을 법한 개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닥쳐오는 현실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지방이 소멸되면 모두 수도권에 모여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인구가 아무리 적어도 도로, 상하수도, 전기와 같은 공공시설과 최소한의 행정서비스는 유지돼야 한다. 단적으로 주민 1인당 소요예산을 보자. 2001년 기준으로 대도시는 43만 원, 군 지역은 200만 원 정도다. 하지만 9년 뒤 2027년에는 대도시 250만 원, 군 지역 1170만 원으로 치솟는다. 결국 그 유지비용은 전체 사회, 모든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세금 부담이다. 지방을 살리는 것이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인 것이다.

지방의 실질적인 자치와 분권을 이뤄 그야말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는 피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다. 오죽하면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아직도 유효할까. 봉건제의 역사를 지닌 유럽은 물론 봉건적 전통이 남아 있는 일본과도 다르다. 인구 1000만이 넘는 선진국 중 분권 수준이 우리보다 형편 없는 나라는 없다. 지방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국가적 에너지로 활용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도 획기적으로. 이를 위한 전제가 분권개헌이다. 6·13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키로 한 것은 애초 정치권이 공감대를 이룬 철석 같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여야 정당은 당리당략 때문에 서로 네 탓 하기에 바쁘다. 급기야 대통령이 정부안을 마련해 오는 26일 발의할 예정이다. 대통령 개헌안이 이르면 오늘 공개되지만, 지방분권의 절실함은 담겨 있지 않은 듯하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분권화 의지가 벌써 퇴색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뒤늦게 국회에서 오는 6월까지 여야 합의안을 도출하겠다고 하는데, 각론을 둘러싸고 이견이 커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중앙정부 관료 출신인 전 부산시장이 했던 말이 있다. “서울에 가 있으니 지방이 보이지 않더라.” 당시 부산시장으로서 지방행정의 한계를 하소연한 것이다. 중앙 권력은 지방분권을 권력의 제로섬 게임 내지 바람직한 정치제도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자치입법권 및 자치재정권을 두고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역량 운운하는 데서 불신과 홀대의 왜곡된 시각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자치분권은 중앙정치권이나 정부가 지방에 시혜적으로 베푸는 선물이 아니다. 지방 사람들로서는 스스로 정치행위를 선택하는 자주적 결정권인 동시에 생존권인 것이다.

매사 때가 있는 법이다. 87체제를 종언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은 불가피하다. 그 개헌의 골자는 지방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지방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수도권 주민도 분권은 안보라는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치와 분권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옵션(선택사양)이 아니다. 지방은 다시 한번 분권개헌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거리에서 촛불이라도 들어야 할 절박한 처지다. 또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논설주간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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