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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성 칼럼] 6·13 이후

보수가 새롭게 바뀔까, 진보는 건실함 지킬까

정치권 지각변동보다 국면의 대전환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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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의 세계인 선거는 사실 전쟁이나 진배없다. 내일이면 판가름 나는 이번 선거에서 헌정 사상 유례없는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선거기간 각종 여론조사와 판세의 흐름들이 그런 징후를 보여줬다. 그간 조사들을 종합해보면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대구 경북 제주 3곳이 접전을 벌이는 것을 제외하고 14곳을 더불어민주당이 석권한다. 또 국회의원 재·보선 지역 12곳 중에는 민주당이 11곳, 무소속이 1곳 앞선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두고 여론조작이라는 둥 억지를 썼지만, 조사 결과는 모두 일관되게 나왔다. 물론 선거는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개표 결과가 어떻든, 6·13지방선거는 ‘보수의 궤멸’로 특징지을 수밖에 없겠다. 우선 보수정당은 분열했다. 보수가 나아갈 방향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심각한 인물난에 전략도 없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걸핏하면 ‘빨갱이의 21세기 버전’이라는 ‘종북’을 들이댔다. 구시대적 프레임 공세에 목을 매다시피한 거다. 더욱이 홍준표 대표의 끝간 데 모르는 막말과 좌충우돌식 돌출행동은 한국당 후보들조차 기피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한국당은 당 대표가 지원유세 포기 선언을 하더니, 선거를 나흘 남겨놓고선 큰절로 그간의 막말 행태를 사과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 또한 ‘한국정치사 초유의 사태’다. 보수의 궤멸은 보수 후보의 당락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보수의 일상과 가치를 담아낼 정치적 공간의 부재 내지 실종을 지적하는 것이다.

6·13 이후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방선거와 미니총선 격인 국회의원 재·보선의 성적표는 정계개편의 변곡점이 될 수밖에 없다. 보수 야당이 문제다. 그 심각성은 선거 기간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는 온데간데없고 ‘홍준표 심판론’이 나왔던 사실이 웅변한다. 6·13선거가 그야말로 ‘보수의 무덤’이 되거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야당이 몇 석도 건지지 못한다면 한국당은 물론 바른미래당도 보수재편의 격랑에 말려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당장은 각자도생을 모색하겠지만, 결국 헤쳐모여식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계개편은 통상 전국 단위의 선거가 극적 결과를 낳으면 한 번씩 이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큰 국면의 대전환을 예상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유권자 지형 또는 정당 지지 기반이 구조적으로 재편되는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 현상의 조짐이다. 2016년 말 촛불집회와 지난해 5월 대선을 거치면서 보수 우위의 유권자 지형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1987년 체제 30년 동안 보수 우위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그 반대로 기울이지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으로 가도 진보 대 보수가 5 대 5의 구도로 복원’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경우, 촛불집회와 남북문제가 상승효과를 일으켜 보수세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번 선거부터 2년 후 총선까지 유권자 지형에 생기는 중대한 변동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이다.

유권자 지형 변화가 비단 한국만의 사안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을 ‘정치지형의 변동’으로 해석한 관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는 그 해 7월 발간한 책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서 미 대선은 힐러리 대 트럼프의 대결이 아니라, 문명사적 대전환과 충돌이라는 프리즘으로 새롭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국 초기의 근대적인 문명의 틀과 주도 세력이 모두 바뀌는 대전환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안 교수는 이미 결과를 예상한 듯 ‘혁명 이후 과거로의 회귀 열풍이 불 듯… 트럼프는 복고주의 운동의 일환’이라고 했다. 요컨대 문명사적 변화라는 큰 흐름을 읽으려면 ‘대선 상황에서 드러나는 정치지형의 변동, 이를 추동하는 주도세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실로 이번 지방선거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비현실적인 격차의 여론조사 결과들도 그렇고, 묻지마식 판세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현장 민심도 종잡을 수 없었다. 재작년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는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로 요동치고 있다. 이번 선거도 그런 변화의 연속이고 일부분일 것이다. 단지 그런 변화를 외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불협과 파열의 소리가 들릴 뿐이다. 안 교수는 앞서 소개한 책에서 ‘한국 보수는 절망적’이라고 단언했다. ‘기존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보수주의 발전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류 보수진영은 다가오는 대위기에 대한 통찰이나 이로 인한 절실함이 결여돼 있다’.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좌우 어느 쪽이든 기울이진 운동장이 위험한 건 매한가지다. 과연 보수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는 진정성과 건실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6·13 이후가 더 걱정이다.

논설주간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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