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정현 칼럼]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24 19:37:16
  •  |   본지 3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아무래도 이 글은 경어체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명색 4대 봉사(封祀)를 하는 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명절 차례를 지낼 때면 좁은 대청에 다 오르지 못한 가족들은 마루 아래에 자리를 펴고 배(拜)를 올리는데 저는 언제나 마루 위였습니다. 서열에 따라 혼자 잔을 올리고 절하는 순서도 있었지요. 뭐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하고 가슴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손해(?)도 컸습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는 집안 차례가 끝나면 외가나 다른 친구의 집을 찾아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았지만 저는 할아버지를 필두로 한 일가 어른들을 따라 다른 종가의 차례에 참여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언제나 오후 서너 시나 돼야 끝나니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해가 저물어 더는 세배를 다닐 수 없었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전날 밤 늦게 복조리를 대문 안에 던져놓고, 첫 새벽에 문을 두드려 세뱃돈 대신 복조리 값을 받아 벌충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에 사내가 문을 두드리면 복이 들어온다는 속설 덕분이었죠. 여자, 심지어는 안경 쓴 사람이 첫 손님이 되어도 복이 나간다는 요즘 기준으로는 턱도 없는 속설이지만요.

기제사 지내는 날의 추억도 괜찮습니다. 그때는 어느 집안이나 자정 무렵 제사를 지냈는데 시간을 기다리다가 잠에 곯아떨어져도 장손인 저는 꼭 깨워 참여시키고 잔을 올리게 했습니다. 끝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나물 얹은 비빔밥에 산적 고기 몇 점과 돔배기라는 이름의 상어고기를 곁들이는 그 맛은…. 통행금지가 있는 때였지만 인근에서 온 가족들은 태연히 돌아갔고, 나중에 알았지만 귀갓길에 경찰이나 방범대원을 만나면 어느 집 제사에 다녀오는 길이라 말하면 손바닥에 스탬프를 찍어 통행증을 대신하게 했다더군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장손노릇과 멀어졌습니다. 설날이야 대개 방학 중이니 차례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추석이나 기제사는 엄두를 못 냈죠.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하필 형사였습니다. 설과 추석은 당연히 비상경계였고, 당직 상황실장은 꼭 연휴기간 중 한두 번 새벽에 비상소집을 발령합니다. 별일도 없는데, 제 시간에 응소하지 않으면 시말서감이니 눈치껏 다녀올 수도 없게 하려는 것이죠. 얼마나 놀부 같아 보이던지!

고향에서 저를 대신하는 동생들이나 어머니에게 영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직이거나 수사본부가 차려져 있지 않은 제사 때는 눈치껏 땡땡이를 쳐 고향까지 차를 달렸죠. 석회(夕會)가 끝나면 이미 오후 7시가 넘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 보면 밤 10시가 넘어 출발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겨울 제사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고속도로도 없는 200㎞쯤 되는 길을 시간에 맞추려면 틈만 보이면 과속이었죠(공소시효는 이미 끝났습니다). 더군다나 눈이 내리지 않아도 군데군데 함정 같은 빙판길이었으니 파트너였던 선배는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핀잔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제사 지내러 가는 길은 마음 푸근했고 한 번의 사고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외국생활을 하게 되자… 말해 뭣하겠습니까. 한참을 그렇게 도리를 못하다가 제사를 절에 모셨습니다. 그러다가 귀국해서 보니 명절의 합동차례는 조상님께 너무 죄스러워 집에서 직접 지내고 기제사만 법회로 대신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더군요. 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시기도 했지만 자식이나 형제도 저마다 바쁘니 전날 저녁이나 당일 새벽에 왔다가 차례만 지내면 음복 잔조차 비우지 못하고 허겁지겁 올라가기 바쁘더군요. 절에서 지내는 기일법회도 혼자이기 일쑤였고요.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어머니를 보내며 일을 저질렀습니다. 참, 제 위로 막내 삼촌분이 계십니다. 어른이시니 조심스럽게 뜻을 밝혔더니 말씀하시더군요. “장손이 나이 들어 그리하겠다면 나야 따라야지.” 죄송했지만 고마웠습니다.

장례기간 중 먼저 가신 4대 일곱 분 산소를 모두 파묘해 어머니 유해와 함께 화장해 선산에 뿌렸습니다.

동생 중 하나가 납골당을 말하더군요. 까놓고 말했습니다. 납골당이라는 곳이 연중 싸늘한 대리석 냉기뿐인데 거기에 이미 가루가 된 유해를 모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얼마나 찾게 될 것 같으냐고 말입니다. 수긍하더군요. 어머니 49제를 지내는 날, 여덟 분 모두의 천도재를 지내고 차례와 제사마저 접는다고 선포했습니다. 나오려는데 너무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스님에게 여쭈었더니 기일법회를 지내지 않더라도 위패는 모실 수 있다더군요. 위패 안치를 부탁하고, 생각나고 그리우면 각자 찾아 절이라도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고백합니다. 솔직히 어머니 장례를 기다렸습니다. 함부로 산소에 손을 대면 있을지 모른다는 동티가 찜찜해서였죠. 그럼에도 작심한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기는 하지만 차례와 제사로 인한 갈등이 가장 큰 까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전 부치기의 힘듦, 손님맞이의 고통 운운하는 세태와 때만 되면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을 방정이라 탓했는데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라야 한둘이 대부분이고, 외국 근무도 흔한 세상인데 그대로 두었다가는 결국 엉망이 되는 것은 불 보듯 환한 노릇이더군요. 벌초는 또 어떤가요.

아들 녀석에게 말했습니다. 자식으로, 아들로, 장손으로, 결혼의 한 짐은 덜어준 것이니 슬슬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멀뚱히 저를 보다가 위패 모신 절에 가면 스님에게 말씀을 드려야 하느냐고 묻더군요. 생각나면 슬그머니 법당에 가서 위패나 한 번 찾아보고 절 몇 번 올리면 된다고 했죠. 그런데 정말 찾아갈까요.

‘서양 귀신은 제삿밥 안 먹는데 우리 귀신만 먹겠느냐’가 요즘 제 뻔뻔한 변명입니다. 혹시 저승에서 조상님들이 배고프다고 펄펄 뛰시면 무릎 꿇고 벌 받을 생각입니다. 이제 며칠 뒤면 차례를 접은 첫 설날입니다. 뭘 할까 궁리 중인데 위패 모신 절은 번잡할 것 같아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하는 게 가장 유력합니다. 아들이 결혼해 새 후손이 생기면 그때는 궁리할 것도 없겠죠, 그놈 하자는 대로하면 모두가 더 없을 테니까요. 참 불효입니다만, 벌써 잊은 듯 하렵니다.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자갈치 관광버스 주차 숨통 트인다…롯데 부지 무상사용
  2. 2주 13.7시간(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초단시간 노동’ 덫에 갇힌 부산
  3. 3비온 뒤 14일 기온 뚝…부울경 최저 8~14도
  4. 4PF ‘돈맥경화’…해운대 옛 홈플·세가사미 개발 잇단 좌초
  5. 5타인의 영화 필름 나르던 소년, 마침내 자신의 세계를 비추다
  6. 6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7. 7민주 부산시당 “국제신문 정상화, 대주주·법원 나서야”
  8. 8‘청문 부적격 2인’ 임명 고심…전재수 “치명적 흠결 못 찾아”
  9. 9“시민 1인 1스포츠가 일상인 부산으로”
  10. 10법정 이어 국감까지…LH, 명지 폐토사 처리 뭇매(종합)
  1. 1민주 부산시당 “국제신문 정상화, 대주주·법원 나서야”
  2. 2법정 이어 국감까지…LH, 명지 폐토사 처리 뭇매(종합)
  3. 3“북극항로 경제성 철저검증…후속계획 반영을”
  4. 4국힘 ‘골프 특검법’ 예고하며 공세…주진우 ‘명 끊을 때’ 댓글에 與 격분
  5. 5경찰청장 대행 “한동훈 딸 의혹, 재수사 가능성 배제 안 해”
  6. 6[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35.2%…민주 35.5%·국힘 41.3%
  7. 7경찰개혁·김지용 중수청장 청문도 공방 예고…부산 해수부 첫 국감
  8. 8경남도 대변인 “박완수 지사 13시간 조사, 정치공세 대상 되면 안 돼”
  9. 9[속보]국감까지 간 '부캉이' … 여야 "상어 생태환경 연구확대 필요"
  10. 10與·한동훈 점입가경 공방 인신공격까지(종합)
  1. 1PF ‘돈맥경화’…해운대 옛 홈플·세가사미 개발 잇단 좌초
  2. 2“항만공사 통합 목적·절차 불투명” 여야 없이 질타
  3. 3상호금융 339곳 대출 연체율 10%
  4. 4AI인재 양성 지원금 94% 수도권 쏠림…부산 1.5% 불과(종합)
  5. 5감천항 동편부두 이름 ‘원양부두’로
  6. 6부산서 ‘순직선원 위령제’ 열린다
  7. 7정부 ‘자율운항 협력’ 조선 공정으로 확대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12일
  9. 9부산TP 지원 3社, 정부 AI·자율제조 사업 따내
  10. 10수입 수산물 유통이력 위반, 5년 전 0건 → 작년 73건
  1. 1자갈치 관광버스 주차 숨통 트인다…롯데 부지 무상사용
  2. 2주 13.7시간(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초단시간 노동’ 덫에 갇힌 부산
  3. 3비온 뒤 14일 기온 뚝…부울경 최저 8~14도
  4. 4‘청문 부적격 2인’ 임명 고심…전재수 “치명적 흠결 못 찾아”
  5. 5“시민 1인 1스포츠가 일상인 부산으로”
  6. 6‘100원 등하교 버스’ 경남 전역 확대…기초학력전담교사도 늘려
  7. 7“복지시설 몇 년 일했지만 퇴직금 0원”…공공부문도 꼼수 채용
  8. 84개월 만에 김경수 만난 박완수 지사 “제도 개선되면 부울경특별연합 검토”
  9. 9박완수 도지사 경찰조사 후폭풍…진보당 “사퇴하라” 道 “왜곡 말라”(종합)
  10. 10미란다 원칙 고지 않고서 허위 보고한 경찰 재판행
  1. 1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2. 2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3. 3어깨 부상 김우민, 수술 대신 재활로
  4. 4롯데, 신인 전원 계약…유망주 박근서 3억에
  5. 5과감한 샷 2R 버디 11개 폭발…유현조 ‘부산의 퀸’(종합)
  6. 6울주군, 삼남읍 교동리에 ‘울주실내테니스장’ 개장
  7. 7차준환, 이번 시즌 국가대표·대회 출전 중단…서울시청과도 결별
  8. 81부 승격 향한 마지막 질주…부산아이파크, 막판 승점 쌓기 총력전
  9. 9유도 차세대 간판 이현지, 세계선수권 정상 메치다
  10. 10허훈·킹 47점 합작에도…KCC, KT에 접전 끝 패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발탁해놓고 감찰
대통령의 SNS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30% 중반 고착된 지지율, 국정 전반 재점검해야
교사 심리상담 급증…교권 침해 더는 방치 안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개척자 정신
빚을 물려받는 사회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