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비대면 사회가 돼 가는 게 요즘 세상이다.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우리 같은 꼰대는 이런 모습이 못마땅하고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어찌하랴. 시대가 그런걸, 그들의 시대가.
오래전 애들 키울 때 컴퓨터 게임 때문에 자주 부딪쳤다. 기계를 붙잡고 혼자 노는 게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사회성 없이 성장하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친구와 뛰면서 놀라고 닦달하다가 애들의 눈 밖에 나고는 했다. 잔소리 많은 아빠라고. 스마트폰이 보급된 뒤에는 밥상머리에 휴대전화를 들고 오지 말라고 야단친 적이 많았다. 대화는 하지 않고 전화기만 들여다보는 게 영 못마땅했다.
이런 걱정도 이제 사치가 될 판이다. 코로나19 확산 탓이다. 감염 우려로 비대면·비접촉을 오히려 권하는 사회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단절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형국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이 곧 사회생활이 됐다. 학교를 온라인으로 다녀야 하니 말 다한 것 아닌가. 학교에 빈 가방만 들고 다녀도 배울 게 있다는 옛 선생님의 말씀은 진짜 옛말이 됐다. 유튜브 결혼식이 등장하고 축하도 온라인으로 한다. 쇼핑도, 결제도, 회사 근무도, 회의도 온라인으로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기업의 채용과정에도 화상 면접이 도입됐고, 부동산 계약도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심지어 활짝 핀 꽃도 온라인 중계로 즐기라고 하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한마디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이 됐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비대면·비접촉 일상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19가 또 다른 세상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이 늦은 입장에서는 이런 희한한 세상이 또 없다. 사람과 사람, 대면만을 사회생활로 여기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그렇다. 사이버 즉 가상 공간에서의 삶을 이해 못 한다.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세상과 결별하는 수단으로 비친다. 시대에 뒤처진 인식의 한계일까. 너무 과장되고 극단적인 걱정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당장의 과제는 코로나19 사태의 극복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천해야 한다. 사회성 운운 등 부작용 우려는 그다음이다. 지금 할 걱정은 아니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