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세상은 없다. 전혀 오염되지 않는 세상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화학의 세계에만 있다. 프랑스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는 ‘깨끗한 물, 순수한 물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완전히 순수한 물인 증류수는 화학적인 작용이란 폭력적인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온갖 생물이 뒤섞여 살아가는 자연을 본래 순수할 수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자연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소망이나 이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동서와 고금이 따로 없는 진리다. 세상은 옳고 그름이 뒤섞여 사는 곳이다. 그런데도 순수한 세상을 추구하려면 속세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세상과의 결별이다. 속세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순수할 수 없는 현실과 부딪히고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 때를 좀 묻히는 걸 연륜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세상과의 접점이다. 때를 묻히면서도 명분을 잃지 않는 처신 말이다. 그 접점을 도덕 교과서는 중용이라고 하고, 보통 사람은 사회 통념이라고 한다. 그 접점을 잘 찾는 지혜는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의 교섭단체(20석) 꿈이 무산됐다. 총선 결과는 6석 확보에 그쳤다. 무엇보다 정의당이 주도해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독으로 돌아왔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든 게 결정적인 타격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 등 위성정당을 두 개나 만든 게 뼈 아프다. 결과론이지만, 정의당은 비례 위성정당의 출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이라는 전통적인 투표 성향을 기대한 건 전략적 실패다. 현실 정치의 구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안이한 전략이다. 이정미 의원은 “순진했다는 것도 죄라면 죄”라고 했다.
그렇다. 현실정치에서는 순진한 건 죄다. 정글이라고 했거늘. 1등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의 그곳에 인정이 있나. 이기는 게 먼저다. 권력은 피를 나눈 형제도 나눌 수 없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그것이 선거고 현실 정치다. 그런 판에서 이상을 고집하면 현실 부적응이다. 무능한 거다. 현실 정치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다고 대중성 확보란 실리를 추구하려니 선명성이 걱정된다.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의 영원한 고민이다. 순수할 수 있는 이상과 순수할 수 없는 현실의 접점을 어느 지점에서 찾아야 할까. 정의당의 현명한 생존 전략을 소망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