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30년 전 즈음. 선배들이 하나 같이 하던 충고는 재형저축과 청약통장 가입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재테크 노하우 전수다. 재형저축은 이율이 높지만, 소득제한이 있어 입사 초에 가입해야 했다. 청약제도도 무주택자에게 매우 유리했다. 청약통장은 1가구 1계좌로 제한돼 있는 데다, 무주택자에게만 1순위 자격을 줬다. 아파트 분양권을 우선 보장한 것이다. 여기에다 분양가는 상한제로 정부가 엄격히 통제했다. 새 아파트 가격이 기존 아파트보다 저렴했다.
그런데 세상 오래 산 이의 지혜를 건성으로 듣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더욱이 이상과 현실을 하나라고 믿던 청춘이었다. 재테크는 세상 때 묻은 이나, 약삭빠른 이가 하는 일쯤으로 여겼다. 둘 다 가입하지 않았다.
입사 2년 차 때에는 금융권에 근무하던 선배가 또다시 재테크 노하우 하나를 전수했다. 아파트를 구입하는 방법이었다. 카드빚으로 고생을 좀 했던 만큼 완전 흘려듣지는 않았다. 단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이런 길이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하우의 핵심은 은행 대출과 전세 제도의 활용이었다. 전제 조건은 구입한 집을 전세 주고, 이보다 저렴한 전셋집에 거주하는 것. 대출받아 집을 구입하되, 전세금으로 대출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그때 알았다. 전세는 우리만 있는 독특하고 좋은 제도라는 사실을. 물론 금융 전문가 일부는 후진적 사금융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전세금 차액은 이자 없이 마련한 투자 종잣돈이 됐다. 요즘 논란인 갭 투자다. 그렇다고 당시는 이를 투기라고 터부시하지 않았다. 중산층으로 신분 상승하려면 거쳐야 할 필수 과정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많은 서민과 월급쟁이는 이런 식으로 집을 마련했다. 큰 평수 아파트 갈아타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하고는 했다.
더욱이 세상은 일직선으로 전진만 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이런 진리를 다소 많이 폭력적으로 가르쳤다. 신자유주의 세상에서는 자기 몸 하나만큼은 자기가 챙겨야 했다. 사회안전망은 노후까지 보장하기에 아직 부실하다. 회사도 개인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탓이다. 실직의 공포는 가진 것 별로 없는 이의 눈을 재테크로 더욱더 돌리게 만든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초저금리 시대가 됐다. 예·적금을 한다고 재테크가 되는 시절이 아니다. 주식은 위험하다. 변동성이 크다. 안전 자산이 아니다. 믿을 건 부동산뿐이라는 인식의 확산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불패 신화’를 봐 왔기에 모아 둔 게 별로 없는 이는 아파트에 집착한다.
문제는 아파트 재테크가 만만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돈이 돈을 번다고 하지 않나. 항상 현금을 많이 보유한 이가 유리하다. 이를 막는다고 정부가 내놓는 규제는 이런 현상을 더 심화한다. 제도의 속성이 그렇다.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면 혜택을 누리는 층은 한정된다. 해독할 능력이 중요해지는 탓이다. 실제 정부는 청약제도 등과 같은 무주택자를 위한 제도를 보완하지 않고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누가 더 유리할까. 당연히 돈 많은 이다. 전세 끼고 대출받아 집 사는 길을 막아버리면 현금이 적은 사람에게는 기회 박탈이나 마찬가지다.
정보력 역시 돈이다. 국가 주도의 개발이 많은 나라이기에.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재산 공개 대상인 중앙 부처 재직자 750명 중 248명이 다주택자다. 고위 공직자라고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 실거주 목적의 1채 외는 처분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모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갭 투자를 하지 말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는 도덕심에 호소하거나, 공포심 조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내놓는 가격 통제 중심의 규제로는 시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비전문가도 안다. 먹고살게 많은 곳에 사람이 모여들고,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소한 무주택자나, 사회 초년생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는 보장하는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측면에서 30년 전 규제가 오히려 더 좋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37개월 만에 21번째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보면서 든 이런저런 생각이다. 이번 역시 후폭풍이 거세다. 뒷북 조치 논란이 많다. 대책의 핵심은 ‘갭 투자’ 차단. 취지는 좋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내가 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라는 말이 나온다. 서민까지 투기꾼 취급한다는 반발이다. 3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는 사실상 현금으로 사도록 한 조치 등에 대한 여론이 특히 부정적이다. 규제가 과정과 기회를 공정하게 보장하지 않아 생긴 현상이다. 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