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추상화가로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는 1935년 뉴욕의 한 화상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실제로 그 그림은 세계 최초의 추상화입니다. 왜냐면 당시 단 한 명의 화가도 추상화 형식의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역사적인 그림입니다.” 편지에 언급한 그림은 그가 1911년 처음 그린 추상화였다. 그런데 그도 우리도 몰랐던 사실이 있다.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린 여성 화가가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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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마 아프 클린트, 10개의 가장 큰 그림(No.7.성인) 1907년. |
스웨덴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는 스톡홀름 왕립미술원을 졸업한 전문 화가였다. 어린 여동생의 죽음 이후 영적 세계와 신비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신지학에 빠져들었다. 1906년 클린트는 ‘원시적 혼동’이라는 제목의 첫 추상화 연작을 완성했는데, 영적 세계를 시각화한 작은 그림들이었다. 이듬해 그는 ‘10개의 가장 큰 그림’이라는 기념비적인 추상 시리즈를 제작했다. 자연에서 따온 유기적 곡선과 상징, 문자와 기호로 화면을 가득 채운 추상화로,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삶의 단계를 묘사한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그중 7번째 작품으로 성인 단계를 표현했다. 152cm 키의 작은 체구를 가진 화가는 폭 3m가 넘는 대형 그림을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그려야 했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그리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완성한 그림들이었다.
1908년 클린트는 신지학자이자 저명한 철학자였던 루돌프 슈타이너를 초대해 이 그림들을 보여줬다. 전문가의 평가를 원했지만, 돌아온 건 충격적인 충고였다. “앞으로 50년 동안 누구도 이 그림들을 봐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의미였다. 낙담한 화가는 잠시 붓을 접었지만, 결국 자신만의 예술에 일생을 바쳤다. 클린트는 돈도 가족도, 비평가나 화상도 없이, 평생 시골에 은둔하며 1000점 이상 그림을 고독하게 실험하며 살았다. 1944년 81세로 세상을 떠날 땐 자신의 작품을 사후 20년 동안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조카에게 남겼다. 슈타이너의 말처럼 당대에 이해받지 못할 그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미래에는 인정받을 거란 믿음도 포함한 말이었다. 클린트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최근에야 활발히 진행된다.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 ‘미래를 위한 그림’에는 60만 명이 찾아 구겐하임 역사상 최다 관객 전시를 기록했고, 2019년엔 그의 전기 영화가 만들어졌다.
역사에서 ‘최초’는 중요하다. 최초로 이룬 자들만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클린트가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서 추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서양미술사는 새로 써야 할 것 같다. 최초의 추상화가는 칸딘스키가 아닌 클린트였다고. 그림을 이젤이 아닌 바닥에 놓고 그린 혁신적 시도는 폴록보다 이 스웨덴 여성 화가가 최소 50년은 앞섰다고.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