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이 있다. 고대 유가 경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녀는 7세가 되면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대개 알고 있다. 그런데 원래 뜻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자리 석(席)은 석(蓆)에서 나왔고 석(蓆)은 깔개나 돗자리, 까는 요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동석(不同席)은 한자리에 합석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한 이불에 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부분 오역된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펜스 룰이란 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펜스 룰은 남성이 가족 이외의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성추행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 시절인 2002년 인터뷰에서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유래됐다. 국내에선 2018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자 그 반작용으로 등장해 유행어가 됐다. 펜스 부통령이 펜스 룰의 원조는 아니다.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 목사 빌리 그레이엄이 청교도적 절제를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이 원칙을 내세웠다.
‘남자와 여자는 구별이 있다’는 것과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남녀 구별의 윤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한자리에 같이 있는 것조차 기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이 펜스 룰과 비슷한 의미가 된 것처럼.
문제는 극단적인 남녀 접촉 차단 강조가 성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직장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 펜스 룰을 실천하면 결과적으로 여성 배제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채용 등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는 “여성 동료와 일대일로 마주하는 시간을 피하는 것이 직장 내 성희롱을 해결할 방법이라 생각한다면, 여성이 업무에서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지지여론이 확산하는 펜스 룰이 이래서 걱정스럽다. 고위 공직자들의 성 추문이 잇따르면서 인터넷에는 ‘비서가 여자라서’ ‘만에 하나 잘못될 수 있으니 앞으로 남자가 비서를 해야 한다’ 등의 글이 넘쳐난다. 그래서 입법되지 못하고 폐기된 일명 ‘펜스 룰 방지법’이 아쉽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4월 국회에서 발의된 이 법안은 채용·고용 과정에서 성별로 인한 불이익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