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제도란 채권과 같은 권리를 일정기간 행사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멸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이자·부양료·급료·사용료·판매한 생산물(상품의 대가)이나 공사에 관한 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또한 ▷여관·음식점의 숙박료·음식료 ▷노역인·연예인의 임금 채권 ▷학생·수업자의 교육에 관한 채권은 1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판결에 의해 확정된 채권도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러한 소멸시효제도는 로마법 이래로 거의 모든 입법례에서 인정되어 오고 있다. 소위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던 자’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권리관계에 관한 증거가 없어지기 쉽다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그런데 채권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청구하지 않는 이유를 보면 채권·채무자가 대부분 가까운 친인척이거나 친구·지인이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선의로 제대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것이다.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 역시 단순히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거나 독촉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재판상의 청구나 압류·가압류·가처분·승인과 같은 법적인 조치가 있어야만 그 시효가 중단되기 때문에 친인척이나 친한 친구 사이에는 더더욱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선량한 채권자들을 과연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던 자’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로마법 이래의 서양의 법제 하에서는 몰라도 우리 국민의 법감정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소멸시효제도의 또 하나의 존재이유는 증거에 관한 부분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담당 재판부가 증거관계를 판단하기 어려워진다는 소송절차적인 부분이 고려된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증거관계에 관한 자료도 더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꼭 계약서와 같은 처분문서가 아니더라도 사진·녹음·카카오톡 대화를 통해서도 권리 관계를 보충적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자료들은 10년이 지나도 객관적으로 권리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소송절차를 통해 채권을 청구하는 경우도 입증 책임은 대부분 채권을 주장하는 원고에게 있다. 재판부는 원고의 객관적인 입증의 정도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우리나라 법원도 현대적인 법질서에 관하여 이미 수십년간의 노하우를 통해서 어느 선진국에 못지 않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소송절차적인 부분도 더 이상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형사 절차에서는 소멸시효제와 유사한 공소시효제도가 있다. 이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기소를 할 수 없는 제도이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5년,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5년,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0년, 장기 10년 미만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7년의 기간이 지나버리면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더 이상 형사처벌을 할 수 없게 된다.
공소시효제도는 상당부분 우리 국민의 법감정에 배치되는 것이어서 그 동안 여러 번 개정됐다. 1995년 12월에는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2007년 12월에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됐다. 또 2015년 7월에는 ‘사람을 살해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공소시효제도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멸시효제도 역시 영구불변의 진리로 볼 수 없다. 사회의 변화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서 당연히 수정·보완해야 한다.
소멸시효제도도 그 기간을 상당부분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법감정에 상당 부분 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친인척·친구·지인들 사이에 분란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서서히 없애나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법무법인 다율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