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잡지사에서 전 세계 140개 도시를 대상으로 안정성, 의료, 문화, 환경, 교육, 사회 기반 시설 등 약 30개 항목을 기준으로 ‘살기 좋은’ 정도를 수치화해 살기 좋은 도시 순위를 발표한다. 올해에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는 99.1점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가 선정됐다고 한다. 2위와 3위는 각각 호주의 멜버른과 시드니, 4위는 일본 오사카, 5위는 캐나다 캘거리 등이다.
우리가 아는 문화, 경제, 예술의 도시인 뉴욕이나 파리는 10대 도시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밖에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도시는 호주 애들레이드, 덴마크 코펜하겐, 캐나다 토론토와 밴쿠버 등이다. 이처럼 살기 좋은 도시의 대부분은 거대도시가 아니라 선진국 중간 규모 도시로 대체로 인구 밀도가 낮은 특징을 보인다.
경제 지표가 중심이 되는 ‘생활수준 향상’을 넘어 ‘더 높은 삶의 질’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쾌적한 도시 환경을 추구하고 살기에 좋은 도시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이런 경향에 맞춰 자연 친화적인 환경, 편리한 교통, 높은 사회적 안전성, 다양한 편의 시설, 좋은 의료 시설, 교육 인프라, 각종 기반 시설 확충, 낮은 범죄율 등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기 위해 많은 도시가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시의 규모가 커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소득과 경제력이 늘면서 사회적 인프라는 확대된다.
도시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난개발이 성행하며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도 고조되고 높은 지가와 주택가격 급등, 범죄율 증가와 빨라지는 전염병 확산 속도 등으로 불평등이 심화된다. 그렇게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도시의 복잡한 여건 속에서 도시생태학자들은 도시의 많은 특징과 문제는 도시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살기 좋은 도시는 거의 거대도시가 아닌 인구밀도가 낮은 선진국 중소도시로, 여유 있는 도시 공간에서 행복한 일상의 시간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도시민의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시민 간 접촉을 줄이는 방역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교통의 중심축으로 구축된 도시 등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에는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많은 대도시가 기후변화·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중교통 중심 정책 그리고 인구 감소와 저성장을 고려해 역세권과 도심지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도시개발정책과는 상충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그래서 대규모 감염병에 대비한 도시공간계획의 패러다임 재편이 제기된다. 한 도시학자는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여러 개 지역 공동체들이 연결된 방식의 분산형 도시가 필요하다”며 “채워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공원 같은 공간을 더 늘리는 ‘비우는 도시’가 앞으로 새로운 도시 모델로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도시공간에서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상하(上下), 전후(前後), 좌우(左右)로 끝없이 퍼져 있는 빈 곳이라 한다. 쓰지 아니하는 빈칸이라고 한다. 비어있는 곳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 만약 공간을 가득 채운다면 공간은 더는 공간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공간을 채우기보다는 비우면서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고, 미래와 꿈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인류 번영을 끌어낸 위대한 발명품이다. 도시민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으로 성공과 부를 축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도시민의 일상이 펼쳐지는 공간이기에 시민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기본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부산의 선천적으로 열악한 도시공간의 구조를 언급하기보다는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차로 위주 보행체계, 공사로 끊어진 보도, 빌딩풍 등 삶의 기본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국제신문의 심층 보도가 필요하다. 사고·사건 전달이 아닌 예방과 개선 차원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도시환경을 만들어 독자에게 전달해주어야 할 것이다.
일신설계 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