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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얕고 가벼워진 정치인의 ‘입’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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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말 한 마디로 원고지 6, 7장짜리 기사를 써야 한다.”

10년 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음 정치부로 발령받았을 때 ‘사수’가 던진 말이다. 이전까지 원고지 10~15장 분량의 ‘꺼리’를 압축해 2, 3장 분량의 기사를 써왔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다른 취재 부서와는 달리 보도자료 형식의 자료도 거의 없던 시절이다. 막막했다. 그러다 정치인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을 여러 각도로 재해석하고 보충 취재를 하면서 정치면 기사를 쓸 수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4·15총선 이후 부산 여야는 경쟁적으로 매머드급 대변인단을 꾸리면서 ‘입’을 대폭 확충했다. 이들은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최소 하루 1건 이상의 논평, 성명, 보도자료를 쏟아낸다. 주제나 내용이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다.

그런데 기자는 10년 전보다 심한 ‘꺼리 기근’에 시달린다. 왜 일까. 대변인, 부대변인 명의로 내는 성명이나 논평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이슈를 ‘재탕’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슈를 선점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상대 당 소속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공격하면서도 ‘팩트 체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역공을 당하기도 한다. 추가 취재를 위해 연락하면 “자료에 있는 내용이 전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야 모두 기억에 남는 ‘카운터 펀치’를 날린 적도 없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고, 마치 ‘의무 방어전’을 치르듯 자료를 양산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신공항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 등 초대형 이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대변인 또는 부대변인이 전·현직 지방의원인 탓에 다음 지방선거를 위해 ‘스펙 관리’ 차원으로 대변인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각종 현안에 대해 전문성이 가미된 논평이나 성명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각 정당이 내놓는 자료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시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지역 정치권이 과거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치를 바라보는 시민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정당의 ‘입’도 그에 걸맞은 품격과 수준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때론 수십 장 분량의 자료보다 촌철살인의 한 마디가 훨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치부 차장 junny97@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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