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영면에 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앞서 지난 6월 먼저 떠난 홍사덕 전 국회 부의장은 서울사대부고 동기생으로 만나 평생 깊은 우정을 유지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5·16군사혁명으로 잠정 중단된 외무고시 재개를 기다리던 홍 부의장이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절친인 이 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서로의 신뢰 속에 개인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서 격의 없는 의견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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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삼성 이건희(왼쪽) 회장과 홍사덕 국회 부의장. 국제신문DB |
2000년대 후반, 남북평화와 통일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홍 부의장은 어느 날 이 회장에게 “네 아버지(고 이병철 회장)는 한반도 남쪽 국민의 민생고를 해결하고 번영의 꽃을 피우게 하셨으니 넌 북쪽에 번영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버지의 뒤를 잇는 진정한 유업이 될 거다”고 은근히 대북 투자를 권유했다. 당시는 재계 라이벌 현대를 비롯한 국내 굴지 기업이 대북투자에 나서던 시기였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컸던 때였다.
이 회장은 이에 기다렸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해주나 남포를 통째로 내놓으라 해라. 그럼 세계적 전자도시로 만들어 북한 경제의 기반이 되도록 하겠다.”
해주, 남포가 어떤 곳인가. 북한 해군의 서해사령부가 있고 첨예한 남북 해상 대결의 전초기지가 아닌가. 그 터무니없을 것 같은 요구에 홍 부의장은 긍정적 눈빛을 보냈고, 이 회장은 말을 이었다. “그들 도시는 대형 민간 항구를 건설할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갖췄으니 대형 상선의 출입이 용이하다. 그건 필수조건이다. 게다가 중국과 가까우니 관련 물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최소한 남북 간 서해 긴장의 재발은 없게 될 것이다.”
당시 대북투자에 대해 아무런 기미조차 내비치지 않던 이 회장의 복심에 그처럼 큰 그림이 있으리라고는 홍 부의장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평화에 그에 대한 기여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 부의장은 이후 북에 이러한 메시지를 보냈지만 끝내 답은 오지 않았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 부족이었는지, 북한 군부의 반대 때문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그 일이 성사되었다면 북한의 상황은 많이 달라져 최소한 핵에만 집착해 국제적 고립상황에 빠져드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와도 훨씬 당당하게 실질적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이 회장의 업적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유독 북한투자와 같은 평화정책에 무심하게 보인 면은 일부 진보세력에게 곱지 않게 보인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회장은 시류에 따라 불확실하고 부실한 투자를 회피한 것일 뿐 강한 의지와 구체적 구상도 있었다는 점은 밝혀둬야 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그런 냉철한 판단이 있어 예정된 실패를 피할 수 있었기에 오늘의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이 있다는 것도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홍 부의장과 함께 오랜 기간 남북 및 외교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었던 후배였기에 들을 수 있었던 내용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기고 형식을 빌려 밝혀둔다.
객원논설위원·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