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부산을 흥성거리게 했던 부산국제영화제(BIFF). 올해 제25회 BIFF는 확실히 예년보다 조용하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라고 문화예술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올해 영화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마련한 ‘커뮤니티 비프(BIFF)’는 시민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른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은 ‘가짜뉴스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김군’을 상영했다.
‘김군’은 80년 오월, 광주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트럭에 올라탄 채 총을 들고 매서운 눈으로 돌아보는 남자. 전직 대령인 지만원 씨는 얼굴 윤곽선을 연결하면 마치 지문처럼 신원을 구별해 낼 수 있다면서 이 남자를 30년이 지난 뒤 북한의 농림상이 된 인물로 지목했다. 광주항쟁 북한 개입설이다. 정말일까. 터무니없어 보이는 주장이지만, 사진 속 실제의 남자를 찾지 못하면 마땅히 반박하기도 어렵다.
광주가 민주항쟁의 상징적인 도시가 되기까지 ‘당시 광주에 공동체를 유지할 민주주의의 근간이 있었다’고 대다수 시민이 협의한 과정이 있다. 그럼에도 때로 기록으로 남지 않은 기억은 이렇듯 허술한 주장 앞에서도 쉬이 왜곡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지난 10월 16일 자 국제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부마항쟁 피해자를 위한 트라우마센터 건립 필요성을 다뤘다.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시리즈가 항쟁 참여자의 증언을 토대로 제대로 된 기록에 매진한 게 벌써 3년째다. 부마항쟁이 뒤늦게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기획을 마무리한 줄 알았는데 올해 또 기록을 이어가는 꾸준함이 돋보인다. 대통령이 참석했던 지난해에 비해 기념식이 덜 주목받는 상황에서 지역언론이 부마항쟁에 무게를 두어 다루었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기도 하다.
지금까지 연재 인터뷰 ‘10월의 트라우마’에서 만난 인물은 부마항쟁을 취재했던 경남매일신문 기자 강경수 씨와 당시 학내 시위를 주도했던 경남대 학생 정인권 씨다. 이들은 부마항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됐고, 고문 후유증을 앓고, 이웃들에게서 소외당하는 고통을 겪어 왔다고 말한다.
‘김군’에서도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 없어 평생 농군으로 살았다는 이, 당시 기억을 상기하는 인터뷰를 하고 나면 오늘 밤에는 또 잠을 이루지 못할 거라는 이, 그때 죽은 동료가 나 대신 죽었다는 죄책감을 수십 년째 안고 사는 사람. 항쟁 당시 피해가 덜 심각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부마항쟁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사는 피해자들이 있다. 국제신문은 6명의 사례자를 심층 인터뷰할 계획이라고 한다.
영화 ‘김군’은 예상보다 더 흡인력이 있었다. 영화를 만든 감독도, 관객인 나도 80년 광주 이후에 태어났기에 역사 속 사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당시를 살았던 인물들의 인터뷰를 듣고 김군을 추적해가며 그때 광주의 사람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걸 느꼈다. 그럴수록 광주는 가까이 다가왔다.
강단이 느껴지는 눈빛, 장갑차를 운전하고 기관총을 다루며 리더 역할을 했던 김군은 넝마주이였다. 무고한 시민이 총을 맞고 죽는 걸 보고는 기꺼이 온몸으로 항의하다가 결국 군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김군이 나서도록 한 건 뭘까. 개인의 서사를 통해 항쟁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 부산지역에 민주화의 기억을 담은 사료관을 건립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영화를 보며 흩어져 있는 사료를 모으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박제된 기억이 아니라 시민이 접근하기 쉽게 현재적 의미를 찾아 활용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사료관이 건립되었으면 한다. 이런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리도록 보도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변화지원팀장·독자권익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