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헌법을 개정하는 개헌을 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가의 근본법인 만큼 변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당헌(當憲)은 말 그대로 ‘정당의 헌법’이다. 정당의 근본법이니 이 역시 엄격하고 신중하게 개정해야 한다. 국민의 뜻이 최대한 반영돼야 하는 것도 두말 할 나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은 어떤가. 각종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현안에 대한 유불리에 따라 당의 헌법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뜯어고친다.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공천 작업을 시작한 여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손바닥을 뒤집고 있다.
먼저 손바닥을 뒤집은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 비위 의혹으로 치러지는 내년 4월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당헌 96조 2항을 개정하면서다. 더욱이 민주당은 당헌 개정을 위해 실시한 전당원투표의 투표율이 26.35%에 그쳤으나 “투표자 86.6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당헌을 개정하게 됐다”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국민의힘도 대선에 후보를 냈다”며 야당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4·15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이 정작 당헌 개정에서는 지지자는 물론 일반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민주당의 당헌 개정을 ‘꼼수’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부은 국민의힘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는 내년 보궐선거 경선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여성, 청년, 정치신인에게 주는 가산점을 예비경선에 한해서만 부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 지방선거 공직후보자 추천 규정 26조를 위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여성계와 출마를 준비 중인 여성 후보의 반발이 확산되자 경선준비위원회는 12일 경선 룰을 확정하면서도 ‘여성 가산점’ 부분에 대한 결정은 보류했다.
정당의 근본법인 당헌을 일관성 없이 상황에 따라 바꾸고 무시한다면 공당(公黨)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집권 여당이나 제1 야당이라면 당헌 개정에 있어 개헌에 버금가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내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한없이 가벼운 당헌 개정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치부 차장 junny9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