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도가 잦아지는 긴급재난문자로 적잖은 공포감과 피로감에 휩싸였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500명을 돌파했으며, 부산도 확진자 수가 늘면서 2단계로 격상됐다는 국제신문 보도(30일 자 1면 보도)가 나왔다. 2주 전만 해도 적은 확진자 수를 긴급재난문자로 확인했고, 백신도 맞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제 뉴노멀이 아닌, 노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들떴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만이 아니라, 대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울리는 알람과 확진자 경로를 보며 코로나19가 다시 내 삶과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확진됐을 때 느껴질 고통과 후유증 때문에 그럴 것이며, 노멀의 삶이 나에게서 한층 멀어졌다는 박탈감이란 감정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앗아가진 않지만, 삶을 위협하는 것들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누군가에게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소설 속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중 다소 신기한 장면이 나온다. 고래형 지능체를 위한 통역기가 등장해, 등장인물 한아가 고래와 대화한다. 고래는 한아에게 “숨쉬기 힘들어, 뭐가 잘못됐지?, 배 아파”라고 연거푸 말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죽음으로 본인을 몰아가는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고래의 대사인 것이다. 고래가 아닌 자연 속 동물의 입장을 메타포한 것일 수 있다.
기후변화로 많은 동물이 죽고, 살 곳을 잃어가고 있다. 뉴스를 틀면 거센 불길 속 수만 마리의 코알라가 목숨을 잃고, 구조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호주 산불이었고, 4만 여마리 코알라가 목숨을 잃었다. 어쩌면 야생동물들은 이미 코로나19보다 더 공포스런 상황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전염병을 피하고, 치료받을 수 있지만 이들에겐 피난처조차도 없다.
환경적으로 암울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기상기구 WMO는 코로나19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 감소할 것이라 예상했다.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은 급속히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삶이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암울한 소식도 잇따라 전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그래서 명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이 따분한 말에 따라,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나름의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실제로 변화를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인다. ‘일주일 채식’, ‘채식주의(비건)’, ‘에코챌린지’ 등이 트렌드 키워드로 부상했다. 일주일만 채식을 해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에, 자그마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성공하지 못해도, 좋은 실패를 남기는 데 의의를 두면서 말이다.
다른 산업보다 미리 앞서가는 출판 업계도 움직임을 보인다. 서점에 가면 환경, 기후위기, 동물권을 깊이 다룬 서적이 자주 보인다. 여러 출판물로 위기 상황을 알려주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독자들도 이러한 흐름에 반응해 환경 분야 책이 베스트셀러에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예를 들면 민음사에서 출판한 ‘우리가 날씨다’와 같은 서적이다. 그렇다면, 신문사는 이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나가야 할까. 우선, 신문사에선 뉴노멀의 기준이 보다 사려 깊었으면 한다. 경쟁과 성장의 잣대가 아닌 상생과 지속의 관점으로 뉴노멀을 정의해보면 어떨까. 독자에게 상생과 지속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여주고, 독자와 함께 열어나가는 것도 신문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의 터전을 침범하여 쾌락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녹지는 회색도시로 변화해갔지만, 사람들은 다시 자연을 찾아 나서고 있다. 가까운 쾌락을 위해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책 ‘우리가 날씨다’의 저자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종말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단지 믿을 수 없을 뿐이다”는 말을 남긴다. 누군가 지시하기 전에 스스로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권익위원·부산대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