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존재의 의인화는 그다지 권장할 만한 사고방식은 아니다. 인간의 관점을 이런저런 것들에 멋대로 투입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착각이나 유치한 장난에 불과하기 십상일 터이다. 그래도 내친 김에 이입을 더 해보자면, 당해 비인간의 입장에서도 사람처럼 취급되거나 상상되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저 저마다 그렇게 있는 비인간과 달리, 인간이 자아내는 모습은 아름답고 멋진 경우도 있지만 가장 추하고 끝도 없이 비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상당 시간 법을 공부하고 법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얘기해 왔더니, 지금 이러고들 있는 우리 인간을 법이 본다면 어떻게 느낄지, 무슨 생각을 할지, 뭐라고 얘기할지 때때로 생각해보게 된다. 같은 법이라도 처한 상황, 활용되어 온 방식, 이제껏 보고 들은 것 등의 차이에 따라 똑같지는 않을 테니 모든 법이 이럴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별 수 없이 내가 만약 법이라면 어떨지 짐작해보게 된다.
내가 법이라면? 단연코 첫 느낌은 ‘됐거든요’이다. 법 자체는 물론, 법의 대리인, 법이 육화된 존재인 법률가도 사양이다. 반갑고 바라지만 감당 안 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결코 고맙지도 않고 ‘아니올시다’이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 법을 걸고 겨뤄지는 것들의 도저한 사나움을 보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싶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법을 찾고 있으니 어쩔 수 없건 자청해서건 누군가는 하겠지만 어떻게 그런 일을 하나 싶다. 변호사가 되고자 매진하는 학생들을 수시로 접하면서도 여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어쨌거나 내가 법이라면? 여전히 도망가고 싶지만, 이미 법이라면 무엇보다도 부끄러울 것 같다. 미리미리, 적어도 제때 제대로 사람들을 도닥이지 않아서 상황은 상황대로 악화시키고 그런데도 버젓이 법 앞에 누군가를 세우는 것에, 법이 하던 대로 작동하는 것 외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적인 다른 방도는 생각하지 못하게 방치한 탓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법을 들먹이게 된 것에, 그러느라 서로가 얼마나 어여쁘고 아픈 존재인지 쉽게 잊어버리게 된 것에 참담함을 느낄 것 같다.
내가 법이라면 그래서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도 같다. 법인 나는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당신들이 서로 얘기를 깊이 듣고 어떻게 지낼지 진심으로 의논하고 스스로 결정해서 온몸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그럴 때 법은 다만 지원장치로 기능할 뿐이라고. 이제까지 잘 못했더라도 앞으로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말아 달라고, 어찌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니 일단 법 없이 해 봐야 한다고 말이다.
그럴 때 사람들의 표정은 어떠할까? 황당해할까?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인간들 위에서 군림하는 걸 당연시하고, ‘법’과 ‘질서’를 쌍으로 묶어 그것들 없이는 당장 큰일 날 것처럼 굴었으니 다른 법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원하는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그려보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낯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자크 랑시에르에 따르면 그것은 ‘치안’이 아니라 ‘정치’를 행하라는 것인데, 이는 녹록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배체제를 일거에 걷어내기는 쉽지 않으니 여전히 지배당하더라도 적어도 이제까지와 똑같은 방식으로는 지배받지 않고자 하는 것이 주체적인 것이라는 미셸 푸코의 말은 어떠한가? 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 경우 법의 반응은 어떠할까? 종래 자기 것으로 여겨온 권력을 뺏기게 생겼으니 마땅치 않아 할까? 훼방을 놓을까? 관심 없는 척할까? 정말로 상관없어 할까? 아니면 잘 됐다고 응원할까? 조용히 지지를 보낼까? 가정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 모두가, 우리 각자가 법이니 어떤 모습일지, 그 모든 것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그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내가 법이라면 적어도 그러하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