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의 일이다. 동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사가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해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서울 집을 매도하고 지방의 넓은 평수 아파트를 매입할까 고민 중”이라는 글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 “서울 집을 전세로 내 놓고 혁신도시 분양을 받아라”는 것이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값이면 지방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현실을 새삼 깨닫는 동시에 균형발전을 위해 혁신도시 특별분양을 해도 결국 수도권 사람들의 새로운 투자처로 전락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는 씁쓸했다.
최근 커뮤니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올라왔다. 경기도 분당에 집이 있지만 서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이 경기도 다른 지역의 아파트에 실거주 두번째 주택 매매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글이었다. 대부분 ‘버티면’ 경기도 아파트 두 채 모두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실현될 것’이라는 도움말이 줄을 이었다. ‘부동산 불패’는 이미 전 국민, 특히 그 중에서도 수도권 주민에게는 신화가 아닌 종교다. 수도권 집값이 잡히지 않는 원인도 이런 심리에 기인한다.
정부가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며 취득세·종부세·양도소득세 등 각종 세금 폭탄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까지 하는 등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내놓아도 수도권에서 시작한 ‘미친 집값’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신용대출을 통한 고가 주택 매입을 차단한다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11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폭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초저금리에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너나할 것 없이 지금이 아니면 못 산다는 ‘패닉 바잉’에 몰두하는 것이 수도권 부동산의 현 주소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향해 수도권 공급확대를 주문하는 수도권 언론의 보도는 공급확대만이 부동산 문제의 유일한 해법인양 호도한다. 공급이 확대된다고 해서 수도권 부동산 거품이 꺼질까.
공급이 확대되면 그 만큼, ‘영끌’ 투자로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신규 수요가 생겨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오죽하면 여당 국회의원 조차도 “집값 안 떨어진다”는 실언을 했겠는가.
정부가 수도권 부동산 공급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수도권에 살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들여야 하나 의구심이 든다. 11·19 전세대책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공전세 주택매입이라는 적자 사업을 떠 맡았다. 공기업 부채는 국가부채이고 그 부담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온다. 게다가 수도권 부동산 규제가 심화되면서 투기 세력이 규제를 피해 지방으로 몰려와 집값을 올려놓고 빠지면 지방의 실거주자들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수도권에 살지 않아도 되는, 지방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 취업해서 계속 잘 살 수 있다면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현상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이 평범한 해법이 있음에도 정부 정책은 수도권 신도시 추가지정,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진 등 균형발전과 역행해왔다. 수도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도로가 만들어지는 등 인프라 시설이 구축돼 GPS 업데이트를 한지 얼마 안돼 운전을 하면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져 놀란다는 지인들의 얘기도 종종 들린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균형발전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균형발전론자는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펼쳐왔다. 문재인 정부가 대외적인 정책 목표는 국가균형발전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간 추진해온 정책을 들여다보면 수도권 일극화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으로 혁신도시 시즌2를 완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대의 지방 이전 등 과감한 지방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논의도 해묵은 것이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문제만 해도 정부 여당이 여전히 수도권의 눈치를 보면서 선거용 카드로만 반짝 부각되기만 했을 뿐, 그 동력을 잃어버렸다.
앞서 동네 주민의 사연처럼, 서울에 있던 회사가 지방으로 옮기게 됐을 때 지방에서의 새 삶을 꿈꾸며 미련없이 서울의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그래서 일까, 지난달 정부의 24번째 부동산 대책인 11·19 전세대책 발표를 보면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바보야, 문제는 균형발전이야.”
서울본부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