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간은 4월에 멈춰있는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낯설게 느껴집니다.(중략) 드라마에서나 보던 신경정신과 진료가 익숙해졌고, 이름 모르는 약을 입 안 가득 털어넣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가 하면 약 없이는 한 시간도 잠들기 힘들어졌습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피해자 A 씨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A 씨는 부산지검이 오 전 시장의 사전구속 영장을 재청구하자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부산지법에 제출했다. ‘오거돈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구속 촉구 1인 시위를 펼쳤다 .시의회에서는 오 전 시장 사건을 계기로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지원 조례안’이 가결됐다.
사건 이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고, 지역사회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데 애 쓴다. 하지만 정작 오 전 시장의 소속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는 오 전 시장의 사건이 벌써 ‘과거’가 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오 전 시장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7일 부산여성단체연합은 ‘공직사회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정책토크를 열었다. 구·군 공무원 직장 내 성희롱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민단체와 시, 시의회, 각 정당 관계자가 재발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여성단체연합은 토론회 패널로 각 정당에 참석을 요청했지만, 민주당은 명확한 사유도 밝히지 않은 채 불참했다. 이를 문의하니 민주당 부산시당은 “구의원인 여성위원장이 구의회 일정과 겹쳤다”는 이유를 댔다. 토론문을 제출하거나 다른 관계자가 참석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여성위원장이 참석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오 전 시장 사건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의 토론회를 단지 ‘여성 당직자의 일과’로만 치부하는 인상이 남는다.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권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단체장의 잇단 성 비위와 당헌 번복으로 이반된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지난 18일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실시했다. 이런 민주당의 반성과 성찰이 이벤트로만 비춰지지 않으려면, 시민사회와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진정성 있는 후속조치와 실천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사회1부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