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고독과 광기, 비운의 천재 화가의 대명사인 빈센트 반 고흐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1888년 가을 고흐는 따뜻한 빛을 찾아 떠난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폴 고갱과 함께 지냈다. 노란 집에서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살며 작업했던 두 달 남짓의 시간은 그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터다. 물론 그해 12월 23일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귀를 자해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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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붉은 포도밭, 1888년. |
‘붉은 포도밭’은 바로 이 시기에 그려졌다. 1888년 11월에서 12월 사이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 그림에 관한 편지를 쓴다. “온통 자주색과 노란색으로 그린 포도밭 그림을 막 완성했다. 작게 그린 인물들은 푸른색과 보라색이고 태양은 노랗다. 내 생각에 몽티셀리의 풍경화 중 하나와 나란히 걸어두면 좋을 것 같다.” 고흐는 이 그림이 자신이 존경하던 선배 화가 몽티셀리의 거친 풍경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그림은 기억에 의존해 그린 것이었지만 고흐는 직접 나가 자연 속에서 그린 것보다 덜 어색하고 더 예술적인 느낌을 준다며 무척 만족해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린 날은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야외 작업이 불가능했다. 평소 같으면 우울하게 보냈겠지만 곁에 친구가 있어 든든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고갱이 정말 재미있는 친구고, 요리도 완벽하게 할 줄 안다며 칭찬한다.
안정되고 기쁜 마음이 반영되어서일까. 그림을 보면 하늘보다 땅이 훨씬 넓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구도를 이룬다. 배경 왼쪽의 나무들은 원근법을 과감하게 적용해 중앙으로 갈수록 작아지고, 태양과 하늘은 고흐의 시그니처 색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밝은 노란색이다.
파랑 노랑 초록 보라 등 농부들의 옷 색깔은 붉은 포도밭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정직하게 노동하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포도밭의 강렬한 풍경이 고흐 특유의 붓질과 색채로 표현된 수작이다.
이 그림은 1890년 1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처음 전시됐다. 벨기에 미술가 20명의 그룹전이었다. 이 그룹은 해마다 해외 작가들도 초대해 함께 전시했는데, 그해에는 폴 세잔을 비롯해 아를에서 다툰 후 결별했던 고갱과 고흐도 초대되었다. 이 그룹의 회원이었던 벨기에 화가 안나 보슈는 ‘붉은 포도밭’을 보고는 400프랑(현재 가치로 2000달러)에 구입했다. 고흐 인생에서 처음으로 판매한 그림이었다.
그녀는 고흐가 아를에서 친하게 지냈던 화가 유진 보슈의 누나로, 동생을 통해 이 네덜란드 화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고흐 그림의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비록 6개월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적어도 그림이 판매된 그날 만큼은 고흐에게도, 형을 평생 뒷바라지했던 동생 테오에게도 최고의 기쁜 날이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